기고49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9) 후기 종교개혁자들이 지켜낸 정통신학 후기 종교개혁자들과 17세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이 초기 종교개혁자들보다도 훨씬 엄밀하고도 정교한 논리체계를 갖춘 신학 저서들을 많이 남겼는데,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루터와 칼빈의 시대에 확산된 "반종교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개신교회 전체를 쓰러트리려 했던 로마 가톨릭의 집요한 공격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칼빈이 서거한 후에, 그의 신학과 다른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근거로 하여 개혁교회를 확고히 세우고자 했던 후기 종교개혁자들과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의 상황과 형편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은 한편으로는 반종교개혁에 앞장선 로마 가톨릭 측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내야만 했었고,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개신교 진영 내부의 알미니안주.. 2022. 8. 30.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8)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통합적인 이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에 대해서 두가지로 구별한다고 해서, 이 두 가지 측면들이 완전히 분리된 두가지 별개의 부분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능동적 순종은 어디까지 만이고, 수동적 순종은 어느 부분부터 어떤 내용만을 말한다는 식으로 각기 따로 분리시킬 수도 없다.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증언들을 살펴보면, 선명하게 두 가지로 딱 분리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이 두 가지 내용을 다 포함해서 총체적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대부분의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두 순종에 대해서 구별은 하되 분리시키지 않는 것으로 특정시키는데, 이러한 순종은 유일무이하며 독특하고 깊고도 오묘한 그리스도의 풍요하심 때문이다. 우리가 .. 2022. 8. 27.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7)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순종함 그리스도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이다. 아담과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인간 자율주의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기도 가운데서 순종의 심정을 피력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마 6:10, 26:42).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종으로서 순종했다. 우리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는 인간들 타락상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불순종은 죄악과 죽음이다. 따라서 사람은 자기의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만 한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교훈적 뜻"과 “결정적인 뜻”으로 구별했다. 교훈적인 뜻은 성경 말씀 안에 계시되었고(엡 5:17, 6:6, 롬 2:18.. 2022. 8. 26.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6) 고난 당하심과 십자가의 죽음은 수동적 순종이다 둘째 아담으로서 십자가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대속적 죽음을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수동적 순종이라고 규정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화목제물이 됨으로써 죄의 사면과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전가를 가져다주는 칭의론의 핵심적인 근거가 된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로 자신을 드리기까지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기꺼이 자신을 바치신 것임을 강조하면서, "수동적 순종”이라고 명명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고난과 희생적 죽으심으로 새언약의 대표이신 그리스도가 “단번에” 모든 죗값을 다 지불하였고, 구원의 모든 조건을 완성하셨다는 점이다. 우리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의 고난을 더 견뎌내고 희생을 치러야지만 구원.. 2022. 8. 23.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5) 능동적 순종은 온 생애 동안 율법 전체에 대한 순종이다 사람으로 몸을 입으시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가 순종의 과정에서 보여준 성육신의 삶에서 놀라운 감격과 은혜를 발견하였다.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무한한 권능을 가진 분이지만,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자신을 죽음에 내어 주시기 위해 정작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 성자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은 단순히 성육신으로만 좁게 해석하지 않았다. 비하의 신분에 계시는 동안에는 신적인 전능하심을 완전히 다 발휘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특권과 지위와 권능을 포기하고, 곧 하나님의 본체가 누리는 모든 영광을 내려놓고, 보통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전능하신 창조주이자 만물의 주권자요 통치자가 우리를 위해서 똑같은 사람이 되셨다. 그리스도가 .. 2022. 8. 20.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3) 능동적 순종은 온 생애 동안 율법 전체에 대한 순종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성육신하여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는 단계에서부터 온전한 순종을 이루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의 몸을 취하였다는 것에 대해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비하”와 “승귀”라는 두 가지 신분으로 풀이했다. 두 가지 상태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바빙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비하의 마지막인데, 동시에 그의 승귀를 향한 길이기도 하다”고 아름답게 묘사했다. 승귀의 신분은 부활과 함께 시작해서, 승천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정좌하시다가 재림과 최후 심판으로 장차 드러난다. 아담의 불순종과 대조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해서 연구한 신약학자 롱네커는 “순종”과 “순종적인”이라는 헬라어 단어와 용례를 추적했다. 그.. 2022. 8. 13.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2) 능동적 순종은 온 생애 동안 율법 전체에 대한 순종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 차례나 시험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명기 6장 13절, 16절, 8장 3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반응하면서 사탄을 물리치셨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그저 이들 세 구절을 인용해서 간단히 답변을 한 것으로만 그쳤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인용한 세 구절을 대표적인 말씀으로 인용해서 응대하면서,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모든 율법과 계명들에 대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준행하고자 하셨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서의 저자들은 아들의 신실함과 순종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음서의 저자들은 아들의 신실.. 2022. 8. 13.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1) 능동적 순종은 온 생애 동안 율법 전체에 대한 순종이다 첫 사람 아담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인간으로 태어나신 이후부터 공생애 사역 기간 내내 지속되었다고 신약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다. 그저 단번에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만 순종을 성취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보다 더 큰 안목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았지만, 온전하신 순종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는 첫 출생부터 생애 전체를 통해서 모든 율법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세례와 함께 시작된 순종이 전 생애 동안에 진행되었다”고 강조하였다. 칼빈의 저술에서는 “능동적 순종”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수동적 순종의 측면과 구별을 제시하였다. 순종의 두 가지 특성에 대한 .. 2022. 8. 5.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0) 중보자의 순종과 언약의 성취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의로움의 전가 교리를 은혜언약과 연결하여 풀이했다. 또한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전가교리를 정립하기 위해서 그 기초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더욱 자세하게 다뤄갈 것이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을 실천하는 일에 매진하는 삶을 추구한다. 의를 “실행한다”는 헬라어는 “포에이사이”인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갖도록 창조하신 모든 인간들이 그의 법을 따라서 완벽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 요구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것만이 아니라, 심지어 죄에 대한 징벌까지도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하는 긍정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죄인에게 그에 합당하고 정당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의를 실행하.. 2022. 7. 30.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9)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 바울 사도는 기가 막힌 대조법을 사용하여,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각각 두 부류의 대표자로 제시하였다. 로마서 5장 12절부터 21절에서 설명한 핵심은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법을 거역했고, 그로 인해서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고, 죽음에 처해졌다. 바울 사도는 부활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두 사람의 대조를 사용한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처음 창조는 첫 사람 아담과 관련 있었으나, 새 하늘과 새 땅은 마지막 아담의 부활과 관련 있다. 구원과 관련된 체험은 부활에 의해서 시작된 새로운 창조 안에서 실존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우.. 2022. 7. 30.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8) 아담의 불순종과 사망의 형벌 인간의 모든 비극과 참담함은 아담의 불순종에 기인한다. 아담에게 내려진 형벌로 인해서 모든 인생은 흙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형벌이 내려졌다. 창세기 3장을 끝으로 하여 낙원에서 추방당했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와 대면이 차단되었다. 그로 인해서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시말을 완전히 파악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 이처럼 험악한 세상에 태어나서 먼 미래와 앞으로 닥쳐올 나날들을 모른 채 살아가게 되었다.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던 부모님, 우리가 사랑하던 사람들도 먼저 세상을 떠나갔다(전 8:17). 그러나 인간에게 소망을 주시는 복음이 선포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에게는 밝은 희망이 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 2022. 7. 23.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7) 2장.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진리를 큰 안목에서 요약하자면,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이라는 대조를 통해서 제시할 수 있다. 죄인들에게 주시는 복된 소식은 간단하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 안에서 사망에 이르게 된 모든 인류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리스도를 믿는 각각의 성도들은 구원을 어떻게 얻는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서 성취되는 의로움과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전가교리를 정립했다. 또한 의로움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의 순종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은 신학적 논의를 하면서 아담의 죄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아담은 아예 제쳐놓고, 신학적.. 2022. 7. 23.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6) 수동적 순종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상에서 죽으심으로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에 순종하신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결정적인 뜻을 이루고자 수동적 순종을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할 때에,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는 사역이 시작되었다. 이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닥치는 고난을 예수님은 전혀 당하지 않아도 되는 분이다.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하는 재해들, 압박들, 거부당함, 상처들, 고통들을 예수님도 역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덤에 장사되기까지 다 체험하셨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의 죄를 지고 가는 “고난받는 종”이다(사 53:1-9). 예.. 2022. 7. 16.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5)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 이 연구에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칭의와 의로움의 전가에 대해서 주목하되, 의로움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살펴볼 것이다. 먼저 그리스도의 모든 지상에서의 사역은 아담의 행동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로마서 5장 12절에서 시작된 두 대표자들의 대조는 19절에서 압축되어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의 부조리와 불행한 죄악의 참상은 아담과 이브에게서 시작되었고, 인류사회에 계승되고 있으며, 문화와 문명을 담아나가는 세계사의 적나라한 실재가 되고 말았다.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아담의 실패와 그 후손들의 죄악이 참담함에도 불구.. 2022. 7. 6.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4)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순종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우리의 것으로 간주하신다는 전가교리의 핵심이 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용서, 희생,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녹아져 있는 기독교의 근본 교리이다. 종교개혁의 칭의론과 전가교리를 계승한 유럽 칼빈주의 개혁교회와 미국 대부분의 장로교회 신학대학원에서 사용하는 조직신학 기독론 교과서에서도 이 두 가지 개념을 계승하고 있다. 한국 조직신학의 기초를 제공한 박형룡 박사도 역시 두 가지 순종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분리시킬 수 없다는 점까지도 세밀하게 소개하였다. 필자는 이런 신학적인 용어들은 칭의론을 확고히 정립한 루터가 처음으로 사용했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루터는 두 가지 의로움, 즉 “능동적 의로움”과 “수동적 의로움”으로 구분해서 사용했는데, 그 이후로 보다.. 2022. 6. 29.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3)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순종 칭의교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우리의 것으로 전가 받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순종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이란 그의 온전하신 순종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성취하신 의로움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온전하신 순종을 떼려야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받아들이는 개혁신학자들이 당연히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서 성취된 의로움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우심을 전가시켜 주시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순종을 강조.. 2022. 6. 25.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2)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전가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성도들의 것으로 인정하여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죄인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서 의로움을 성도들의 것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전가교리를 포함하고 있다. 아무리 완벽한 기독교 신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격적 의로움이나 내재적 의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전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신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라는 신분을 얻도록 은혜를 베푸셨는가? 칭의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죄를 씻어버리는 일과 죄에 대한 형벌을 면제해 주신다는 선언이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와 연합된 백성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율법의 저주를 받아서 죽음으로.. 2022. 6. 21.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 1장. 칭의론과 전가교리의 핵심개요 초기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말기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이 빚어낸 로마 가톨릭의 오류와 혼돈 속에서 성경을 헬라어와 히브리어 원문으로 읽고 난 후에,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구원에 대하여 새로운 눈을 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값없이 베푸신 은혜로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는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자, 로마 교황청에서는 저주를 선언하고, 정죄했다. 종교개혁의 유산을 물려받은 개혁주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확실한 기초로 삼아, 어떻게 죄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칭의론을 정립하였다. 성경에서 해답을 얻은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죄인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로마 가톨릭과는 전혀 다른 해답을 .. 2022. 6. 14. 개혁주의 신조 모임<‘서철원 목사님’과 ‘예장 합동’과 ‘예장 합동 이대위’는 창피를 알아 ‘예장 합신’에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개혁 교회 정통 교리인 ‘그리스도께서 율법준수(능동) 순종으로 얻으신 의義와 그 의義의 전가’ 교리는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난독증 환자들이 아닌 이상 {기독교 강요 제2권} [17장] 에서 ‘명백’하게 볼 수 있는 교리다. 즉, 여러 강설집에서 ‘그리스도께서 율법준수(능동) 순종으로 얻으신 의義와 그 의義의 전가’ 교리 중요성을 말씀하시면서 “이 교리는 종교개혁 시대 때부터 개혁 교회가 명확하게 천명한 교리임”을 강조하셨던 김홍전 목사님 가르침대로 이 교리 창시자는 우리 개혁 신앙의 선조 칼빈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지난 2월 16일~17일에 열린 ‘예장 합동 이대위 세미나’에서 칼빈 선생님이 창시자이신 이 교리를 두고 “이단 사상”으로 단죄하신 서철원 목사님은 ‘{기독신문.. 2022. 1. 7. [특별기고] 비대면 예배의 문제점(6)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교회론 3) 언약의 확증으로서의 제사와 예배 신약의 교회와 그들의 예배는 구약성경에서 이어져 내려온 메시야의 대망과 재림의 소망을 지속적으로 공유한다는 연속성이 있다. 그러나 신약교회에서는 예배와 성례에 있어서 구약의 의식들과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신약교회에서는 더 이상 아들을 위해서 할례를 시행하지 않으며, 동물 제사를 드리지 않으며, 유월절 절기를 예배의 일부로 지키지도 않는다 (고전 7:17-21). 구약성경에서는 성전이 예배의 중심장소였으나, 그리스도가 지상에서의 구원사역을 완성하신 이후에는 성소의 휘장이 찢겨졌다. 더 이상 그곳에서의 예배란 무의미하다는 하나님의 뜻이 선포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원형으로서 구약시대에 제사의 제도 (system)를 명쾌하게 제정해 놓으셨다. 제사장 마음대로, 혹은.. 2022. 1. 7. [특별기고] 비대면 예배의 문제점(5)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교회론 3. 예배자들에게 내리시는 생명의 양식 왜 모이기를 힘써야 하고, 그 모임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약속을 하셨다. 성도의 삶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평생 동안 경건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성도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있기에, 교회 밖에서는 그 어떤 경건의 진보라도 이룰 수 없다. 경건한 성도로 우리가 장성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된 교회와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나가는 모든 일들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누구도 개인적인 경건생활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눈에 보이는 지역 교회를 통해서 자라나고, 양육을 받는다. 다음 3장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2022. 1. 7. [특별기고] 비대면 예배의 문제점(4)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교회론 2.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모이는 교회들 미국 로스엔젤레스 밴나이스 시에서 ”그레이스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존 맥아더 목사는 비대면 예배를 전면 거부하고 있다. 그는 히브리서 10장 25절을 인용하면서, 예배금지 조치에 반대하는 설교에서, ”교회가 문을 열어야 하는 임무“를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법조항에 근거하여 이 지구상의 어느 국가 권력이라 하더라도 교회의 예배 모임을 금지하거나, 제지할 권한이 없음을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입장을 견지한 소송들에 대한 판결들이 나왔고, 대부분 교회가 승소했다. 필자는 이것이 오직 교회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입장에서 나오는 무리한 주장이자, 성경의 왜곡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목회자로서 본인의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에게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강조하는 .. 2022. 1. 7. [특별기고] 비대면 예배의 문제점(3)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교회론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종말을 향한 신앙인의 태도와 자세이다. “그 날이 가깝다”는 인식이 가장 중요한 열쇠를 갖고 있음에 주목해야만 한다. 가장 정확한 영어 성경번역으로 알려진 ESV 신약성경에는 ‘그 날이 가깝다’는 구절을 “아주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그 날”(the day drawing near)이라고 번역되었다. “아주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그 날”을 대비하려는 성도가 깨어서 준비하려고 다 함께 모이는 일에 열심을 냈던 것이다. 이처럼 히브리서에는 종말 신앙의 언급이 깊이 배어있다. 또한 조금 뒷부분에 해당하는 히브리서 12장 22에서는 성도가 소망을 갖고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히브리서 12장 18-29절에서는 “시.. 2022. 1. 7. [특별기고] 비대면 예배의 문제점(2) 코로나 팬데믹 시대의 교회론 1장 왜 교회에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가? 슬프게도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교회에서 개최되는 집회에 참석하지 말라는 지침을 놓고, 정부 방역당국과 교회 사이에 점점 대립하는 양상이다. 전염병을 관리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집회 금지령을 발동하여 교회의 모임을 제한시키고 있다. 금지 조치를 강요하는 정부에게는 다소 유리한 명분이 있었다. 2020년 초, 대구 신천지 집회는 불특정 다수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진원지 역할을 했었다. 이들은 이미 사이비 재림 교주를 따르는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인데, 비상식적인 행사들을 진행하여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 그 후로 한국교회는 거의 다 예배 금지 조치에 호응하여 방역대책에 협조하게 되었지만, 거의 2년 가까이 오랜 시간이 경과 되면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2022. 1. 7.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