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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재성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5)

by 깨우는자동훈 2022. 7. 6.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

이 연구에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칭의와 의로움의 전가에 대해서 주목하되, 의로움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살펴볼 것이다. 먼저 그리스도의 모든 지상에서의 사역은 아담의 행동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로마서 512절에서 시작된 두 대표자들의 대조는 19절에서 압축되어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의 부조리와 불행한 죄악의 참상은 아담과 이브에게서 시작되었고, 인류사회에 계승되고 있으며, 문화와 문명을 담아나가는 세계사의 적나라한 실재가 되고 말았다. 기독교의 기본진리는 아담의 실패와 그 후손들의 죄악이 참담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구속사역을 성공적으로 성취하시고 성령을 보내어서 복음을 받게 하여 새 언약을 맺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대표가 되는 아담의 죄악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시작을 보여주셨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를 통해서 기독교의 기본진리가 밝혀졌다. 아담은 사탄의 미혹에 넘어져서 실패했으나, 그리스도는 사탄과의 대결에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셨다. 히브리서 26-9절에서도 이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아담은 모든 인류의 머리가 된다.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의 대표이자 머리가 되신다.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는 아담이 실패한 것들을 완전히 다시 성취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치르셨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그를 믿음으로 신뢰하는 자들에게 동일한 의로움을 전가시켜 주신다. 비록 우리는 죄인이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고, 이제는 새사람이다(고후 5:17).

 

우리는 예수님의 속죄의 보혈을 통해서 우리 죄인들의 죗값을 치르신 것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다. 따라서 죄 없으신 어린 양으로서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기에 그가 인간의 몸으로 오신 후 일평생 동안 율법을 모두 다 지키고 사탄의 미혹을 이겨냈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그의 율법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는 것이 기본 바탕에 있다. 그래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평생 동안 지속해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고자 살아간 것을 능동적 순종이라고 따로 구별했고,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고난과 저주를 받고 피 흘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은 수동적 순종이라고 규정하였다. 두 가지 개념을 후기 종교개혁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매우 중요하게 다뤘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두 가지 개념들로 능동적 순종수동적 순종으로 나눠서 칭의와 의의 전가교리의 근거로 삼는 것은 타당한가?

이렇게 두 개념의 형용사를 사용해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서 구별할 때, 오묘한 복음의 비밀들을 인식하게 된다. , 능동적 순종은 그리스도가 성육신한 이후로 지상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모든 율법을 지켜서 완전하게 순종하셨음을 말하는 것이고, 수동적 순종은 마지막 절정의 단계인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속죄의 제물이 되기까지 순종하심을 말하기 때문에, 구속사의 진행 과정을 보면 두 가지로 구별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서 나눠봄으로써, “능동적 순종의 개념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가 죄 없는 속죄 양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고 말할 수 있다.

 

히브리서 415절에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였다. 그가 지상에서 살아간 모든 날 동안에 율법의 요구에 대해서 완벽한 순종을 하셨기에, 자기 백성을 위해서 희생하셨다는 점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다시 히브리서의 설명을 읽어보자.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2:17-18).

 

그러나 구속사의 진행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징들만이 이 두 가지 용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능동적이라는 형용사는 그리스도가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그의 생애의 모든 순간마다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심을 의미한다. “수동적이라는 형용사는 원래 라틴어 동사 파티오르(고난을 당하다)”에서 하온 것으로 그리스도가 전 생애를 순종하신 가운데, 특별히 마지막에 그가 몸과 영혼 안에서, 전체 인류의 죗값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한 것이다.” 위 문장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37번에 설명되어 있다. 앞으로 우리는 60번 문항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다뤄볼 것이다.

 

다만, 우리가 이런 용어들을 사용할 때에 결단코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두 가지로 분리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 전체가 다 순종하는 삶이었는데, 더욱더 정점에 이르러서 처절한 희생이 개입되어있는 부분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찰스 핫지 교수가 이 두 가지의 형용사를 붙여서 설명하고자 한 바는 그가 인간으로 잉태된 순간부터 부활하기까지의 전체가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구속 언약에 따라서 자발적인 확실성을 실행하고, 또한 행위언약에서 요구된 둘째 아담의 구원사역을 성취하고자 성자께서 성육신하여서 이 언약들의 법적이니 요구들을 성취하셨음을 믿는다. 성자께서는 이 언약들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능동적인 고난을 당하는 순종을 하심으로써, 죗값을 지불하고 진노를 없애주셨고,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칭의와 영생을 주실 수 있게 되셨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가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그의 의로움을 전가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은 능동적 수동적 순종을 통해서 성취하셨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은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율법의 요구들을 온전히 순종하신 것을 가리킨다. 수동적 순종은 하나님의 언약을 깨트린 결과로 받게 되는 형벌을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당하신 것을 말한다.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과 승천으로 영화로우신 지위로 복귀하셨다. (계속)

 

김재성 교수

김재성 박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개혁주의 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칼빈의 신학사상과 정통개혁신학의

흐름과 주제들과 주요 신학자들을 추적하여 소개하는데 앞장서 왔다.

현재는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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