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정성우

준비 교리에 대한 올바른 주장 (4)

by 바른신앙지기 2022. 1. 7.

오늘은 벨직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조에서 나오는 율법의 기능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도르트 신조 “셋째와 넷째 교리: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께의 회심, 그리고 회심 후의 태도”의
제 5장에서는 “십계명이 죄의 비참함으로부터 인간을 치유하거나 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제시하지 않지만, 죄의 심각성과 그 죄악 속의 인간을 보여줌으로써 육신의 연약함으로 저주 아래 있는 인간은 이 율법만 가지고는 도저히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다고 밝히고 있다.

즉 율법은 죄의 비참함을 알게 하며, 치유가 없다는 것을 제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죄의 심각성과 죄악 속의 인간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며 저주 아래 있으며 도저히 율법으로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음을 알게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참함과 저주 아래 있음과 소망이 없음을 깨달을 때 조명 가운데 있는 인간의 심정은 어떠할까? 자신의 죄로 인하여 힘들고 억눌리며, 저주 받은 자로써 자신의 인생이 한심하고 소망이 없기에 낙심하지 않을까? 이러한 상태에 있어본 사람은 알지만 더 이상 지신에 대한 기대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을 보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 또는 겸비해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 부분까지가 율법의 기능 또한 준비 교리(Doctrine of preparation)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고 그 누구든지 주님을 부르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효적 역사를 통하여 이제 그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며, 돌같은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는 역사 그리고 주님을 바라보고 달려 나아가고자 하는 역사, 뿐만 아니라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역사까지도 유효적 역사를 통하여 주시는 것이다. 물론 어떤 신학자들은 유효적 역사와 중생과 구별 시켜 말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나는 유효적 역사가 그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당연히 중생한 사람이라고 본다.

그리고 벨직 신앙고백서 제 17조를 통하여 살펴본다면,
“우리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 육체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빠져서, 전적으로 비참하게 된 것을 보셨을 때, 당신의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으로 사람이 당신께로부터 두려워 떨면서 도망칠 때 그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주어 여자에게 태어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복된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라고 하는 약속으로 위로하셨습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벨직 신앙고백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게 될 수 있을까?를 살펴본다면, 당연히 율법으로써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과연 누가 이러한 인간의 비참함을 깨닫고 두려워 떨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과연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 때 두려워하며 떨 수 있을까? 아닌 것은 그 누구도 알 것이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조명이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을 아무런 느낌도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청교도들을 그림의 사자로 자주 설명한다. 즉 사람들이 그림 속에 사자가 있을 때는 무서워하지 않다가 조명으로 그 그림을 볼 때, 마치 사자가 그림에서 튀어나와 자신 앞에 으르렁 거리며 서 있는 것과 같이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가르쳐도 사람들은 그냥 이성으로만 알고 배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조명 가운데 진정으로 자신이 죄인이며 비참함 속에 그리고 저주 가운데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깨닫고 슬퍼 울며 두려워하며 떨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의 역사로 그렇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당연히 성령님의 역사이다. 이러한 부분을 준비 교리(Doctrine of preparation)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진정으로 성령께서 그들의 심령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겸비해 지는 마음까지 인도하시며 복음의 선포로 주님 앞에 무릎꿇고 주님을 찾으며 바라보게 되며 주님께 나아가는 유효적 역사를 통하여 선택 받은 백성에게 은혜의 언약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약사로 이루어지는 준비 교리(Doctrine of preparation)와 유효적 역사와 구분해서 봐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율법의 기능을 중생 이후에 둘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복음 전에 율법이 있지 복음과 율법이 같이 오지 않는 법인 것을 성경을 통하여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갈 3:24)라고 한 말씀은 율법이 몽학선생이 되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는 것임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기에 율법과 중생(복음)이 같이 온다거나 복음(중생)이 먼저 오고 율법이 온다는 것은 성경적이지가 않다.

정성우 목사

정성우 목사는 Jericho College and Seminary를 졸업하고,

칼빈과 청교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는 인천 청라지역에서 개혁주의 교리에 입각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안에 하나교회를 섬기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