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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재성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19)

by 깨우는자동훈 2022. 8. 30.

후기 종교개혁자들이 지켜낸 정통신학

후기 종교개혁자들과 17세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이 초기 종교개혁자들보다도 훨씬 엄밀하고도 정교한 논리체계를 갖춘 신학 저서들을 많이 남겼는데,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루터와 칼빈의 시대에 확산된 "반종교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개신교회 전체를 쓰러트리려 했던 로마 가톨릭의 집요한 공격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칼빈이 서거한 후에, 그의 신학과 다른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근거로 하여 개혁교회를 확고히 세우고자 했던 후기 종교개혁자들과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의 상황과 형편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은 한편으로는 반종교개혁에 앞장선 로마 가톨릭 측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내야만 했었고,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개신교 진영 내부의 알미니안주의, 소시니안주의, 아미랄디안주의, 신율법주의, 반율법주의 등 다양한 분파들의 분출 속에서, 바른 교리를 지켜내고자 사활을 건 투쟁을 전개해야만 했었다.

 

특히,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은 칭의와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확고하게 세우지 않으면, 기독교 구원의 전체 구조가 무너지게 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트렌트 선언서가 나온 이후로, 여전히 로마가톨릭이 강조하는 각자가 내적인 성화를 완성해서 구원을 받는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로움을 전가해주심으로써 구원이 주어진다는 점을 확고히 정립해야만 개신교회가 무너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한층 더 강화하고자, 그 핵심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두가지 개념,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용어를 동원해서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전가 받는다는 교리를 보다 더 명쾌하고 확고하게 세우고자 했다.

 

칭의와 전가교리와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한 의로움의 성취로 연결하는 구원의 교리를 무너뜨리려는 자들과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의 변화와 배경을 이해하지 않으면 17세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에 대해서 오해하게 된다. 칼빈 사후에 활동한 17세기 신학을 "개혁파 스콜라주의라고 비판을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논리적이고, 정교하며, 체계적인 교리작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신학자들이 그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내용을 왜곡하거나 변질시킨 것은 아니다. 칼빈과 초기 종교개혁자들은 속죄의 범위에 대해서 논쟁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제한속죄냐 보편 속죄냐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돌트 신경 작성 시 알미니안주의를 다루면서 베자가 예정교리를 강조하였다. 그로티우스와 데카르트가 등장하여, 갖가지 회의론과 의심을 증폭시켰다. 당연히 칼빈의 시대에 없던 논쟁이 벌어졌으므로, 베자와 퍼킨스의 이중예정론(선택과 유기)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종교개혁의 시대를 전체적으로 되돌아보면, 칭의를 위한 기초가 신자들 속에 있는 것으로 보려는 입장과 그와는 정반대로 오직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전가 받는다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견해가 대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지금까지도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로 나누어지는 원인임을 정확하게 파악하여야만 한다. 개혁주의 칭의론의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심과 그의 순종이다. 그래서 외부에서 오는 의로움이요, 하나님의 선언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다음 세 가지 입장들은 완전히 사람 자체 속에서 칭의의 근거를 찾으려 한다.

 

첫째, 로마 가톨릭의 칭의론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함께 성도가 사랑을 통해서 역사하는 믿음의 선행을 근거로 하고 있다. 트렌트 선언문에 담긴 이러한 "신인협력설은 아직도 여전히 로마 교회 안에서 불변의 공식으로 강조되고 있다. 성경에 담긴 가르침들을 아무리 외쳐보아도 전혀 교리의 오류를 수정할 줄 모르는 공룡과 같은 집단이다.

 

둘째, 오시안더는 전가교리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본질적 의로움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그는 성도들 속에 내주하는 신적인 본성의 의로움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시안더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우리 성도들 속에 주입한다는 식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주장하였기에 혼란과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셋째, 알미니우스는 믿음에 기초를 두는 칭의를 말하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믿음이 마치 의로운 것처럼 살펴보신다고 주장한다. 알미니안주의의 문제점이 바로 신본주의 신학이 아니라, 인본주의로 전락하는 구조적 변질이었음을 분별해야만 한다.

 

루터와 칼빈 등 초기 종교개혁자들은 "우리들 밖으로부터" 오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성도에게 전가해 주신다는 교리를 정립하였다. 그 배경은 로마 가톨릭이 외부로부터 오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전가 받는다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루터파 신학자 오시안더Andreas Osiander(1498-1552)가 믿음으로만 얻는 칭의를 거부하고, 대단히 혼란스러운 개념을 내놓았다. 그는 성도들 내부 속에, 인격적인 내주의 덕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신적인 본성의 본질적 의로움을 공유함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오시안더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이 우리 안에 주입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본질적으로 의롭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우리와의 연합을 통한 의로움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루터파와 개혁주의 양 진영에서 모두 나서서 오시안더의 칭의론을 배척했다. 필립 멜랑히톤이 비판했고, 칼빈도 앞장서서 배척했다. 칼빈은 성도가 의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행위에서 벗어나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오시안더의 본질적 칭의론이란 일종의 혼합물을 상정하는 것인데, 신성이 우리 안에 채워져서 주입된 의로서 하나님과 함께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칼빈은 칭의의 방식을 설명하면서, 전가에 의해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소유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실제로는 의롭지 않다고 설명하였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까지 순종하신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다고 받아들여지게 되며, 그와 연합하여 신비한 영적 교통을 누린다는 것을 강조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 신비한 연합의 문제가 우리에게 최고로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것이 되시면, 그가 받으신 선물들을 그 연합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 나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우리 바깥에 계시는 분으로 멀리서 바라보면서 그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있으며, 그의 몸에 접붙인 바 되었으며, 간단히 말해서 황송하게도 그가 우리를 자기와 하나로 만드셨으므로, 우리는 그와 함께 의로움의 교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귀하게 여기고 자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워짐을 비웃는 오시안더의 비방을 반박하는 것이다.

 

칼빈은 루터가 설명한 두 가지 의로움"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었고, "객관적 칭의"라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지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의로운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범죄들이 그리스도의 무죄하심으로 가리어져서 우리의 행위들이 의로운 것들이 되며, 그렇게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위에 온갖 허물들이 있더라도, 그리스도의 순결하심 속에 묻혀지며, 그리하여 그 허물들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 않으시는 것이다.”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두 가지 개념의 의로움이 전가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루터가 제시한 두 가지 칭의 개념은 널리 알려졌고, 이런 개념들을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활용해서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체계화했다.

 

21세기의 우리는 매우 편리하고, 자유를 누리면서 신학 저술을 발표하고 있지만,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로마 교황청과의 신학 논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일반 성도들은 아무런 구원의 확신도 없었고, 감격도 얻지 못한 채, 로마 가톨릭예배당에서 성직자들이 전해주는 성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한 복합적인 대립과 혼돈의 상황 속에서 후기 종교개혁자들은 단순히 이전 세대의 학문을 그대로 반복할 수만은 없었다. 좀 더 사변적이라고 하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철저히 자신 같이 모든 인류는 이제 자신들의 순종을 통해서 의로움을 이룩할 수는 없게 되었기에, 그들을 위해서 의를 이룩하실 분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계속)

 

김재성 교수

김재성 박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개혁주의 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칼빈의 신학사상과 정통개혁신학의

흐름과 주제들과 주요 신학자들을 추적하여 소개하는데 앞장서 왔다.

현재는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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