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메니우스, 일치신조에 사용된 "능동적", "수동적" 의로움
필자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는 신학 용어의 출처에 대해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저서들을 조사해 본 결과, 이 용어의 근원에 해당하는 개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신학자는 마틴 루터였다. 하지만 루터가 처음 사용했을 뿐이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보충이 필요했는데, 루터파 신학자 메니우스가 그리스도의 능동적,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제시했다. 마침내, 루터파 신학총론인 일치신조(1577)에서는 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되었다. 아래에서 자세히 이러한 발전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루터가 워낙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그의 칭의론은 기독교의 신학사상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룩했기 때문에, 유럽의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크게 거부반응이 없이 칭의와 의로움의 전가를다루면서 이러한 용어들을 재활용하였던 것이다. 그는 탁월한 대조법을 사용했는데, “영광의 신학 대 십자가의 신학", "율법 대 복음", "노예의지 대 자유의지" 등 뛰어난 학자의 어휘 능력을 발휘해서 성경의 진리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성실한 수도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루터는 성경을 통해서 당시 스콜라주의와 로마 가톨릭의 구원론이 너무나 왜곡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사용한 신학적 개념이나 어떤 특정한 사상은 진공상태에서 갑자기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신학 사상이나 교리적인 용어라도 반드시 누군가의 저서에서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것이고, 약간의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가운데 새롭게 정립되어진 것이다. 기독교 신학사상은 어떤 천재가 하루아침에 모두 다 터득해서 종합해 낼 수 없다. 방대한 성경의 내용과 배경을 어찌 다 꿰뚫어서 알 수 있겠는가!
중세 후기 가브리엘 비엘의 신인협력설에 대해서 루터는 반론을 제기했다. 도대체 인간이 어떤 공로와 선행을 수행할 수 있겠으며, 그것이 기초가 되어서 의인이 될 수 있을까? 루터가 바울서신을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수동적 의로움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구원은 용서의 약속을 제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신자에게는 새로운 신분과 깨끗한 마음과 새로운 본성을 주신다는 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루터는 인간이 아무리 선행을 쌓으려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이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주장할 수 없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음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다.
율법과 복음의 대조가 스콜라주의 신학에는 전혀 없었는데,루터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만이 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의식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깨닫게 되었다. 루터가 “수동적 의로움”을 발견하게 된 것은 "능동적 의로움”과의 대조를 통해서였다.
필자는 종교개혁 오백 주년 기념의 해에 펴낸 책 『종교개혁의 신학사상』에서 루터가 능동적 의와 "수동적 의"라는 수식어들을 사용해서 개혁주의 칭의론을 처음으로 정립하고자 했음을 소상히 밝힌 바 있다. 물론, 필자가 이미 펴낸 연구에서 지적한 대로, 루터의 칭의론과 지금 우리가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개념이 전부 다 동일한 것은 아니다. 다만 칭의론의 대전환을 가져 온 루터의 놀라운 인식 전환과 신학적 분기점에는 매우 신선한 언어적 대조가 채용되었다. 즉, “능동적 의로움”과 “수동적 의로움”을 대조적으로 비교하면서, 루터는 공허한 로마 가톨릭의 공로주의를 배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다루는 "능동적", "수동적" 순종이라는 개념과 내용들이 루터의 두 가지 의로움에 대한 개념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여러 차례 두 가지 순종의 기본 개념을 설명했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려 할 때, 능동적 측면과 수동적 측면으로 구별해서 살펴보는 것이 성경의 핵심을 이해하는 안목을 열어 준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두 가지 순종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신학자는 루터파의 일원으로 활약했던 유스투스 메니우스Justus Menius(1499-1558)이다. 그는 멜랑히톤의 제자로서, 에르푸르트에서 목회와 교수 사역을 하면서, 당시 논쟁의 대상이던 안드레아스 오시안더의 칭의론을 반박할 때에 그리스도의 순종이 지니는 두 가지 차원을 강조하였다. 1552년에 출판된 『의로움』에서, 메니우스는 성도들이 받게 되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은 우리 안에 신적인 의로움이 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인성이 관여해서 성취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결과로 얻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초기 종교개혁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던 메니우스는 로마 가톨릭의 요소들을 완전히 벗어난 신학자가 아니어서, 다른 신학적 주제들에 대한 그의 설명들은 다소 혼란스럽다.
메니우스가 사용한 두 가지 순종의 개념들이 가장 정확하게 공식적으로 표현된 문서가 루터파의 공적인 고백서로 채택된 『일치신조』 (1577)이다. 루터 사후에 다양한 신학들이 분출되자,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총 12 항목으로 루터파 신학을 총정리한 것이다. 제3항목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의로움"이다. 곧 칭의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성도들은 의롭다 하심을 얻는데, “우리의 죄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셨고, 우리를 위해서 율법을 만족시켰다"라고 각각 구별했다. 따라서, 그의 순종은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대상이 되어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신 것"과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것”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은혜로 얻는 의로움이란 믿음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고, 또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율법을 만족시키고, 우리의 죄에 대해서 죗값을 지불했을 때에 그리스도의 부활과 열심과 순종이 믿는 자들의 것으로 인정된다. 그리스도는 사람일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자 인간으로서 하나의 분리되지 않는 한 인격 가운데 계셨다. 그가 율법의 주인이지만, 사람이었을 때에는 율법 아래서 약한 자였고, 그의 인격에 대하여 고난을 당하고 죽어야 하는 의무를 감당하였다. 따라서, 그의 순종은 그의 고난과 죽음 가운데서 만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완전한 형태로 율법을 지키고, 기꺼이 율법에 복종하신 것으로 구성된다.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를 거룩하고 의로운 자로 간주하시고, 이러한 전체 순종으로 인하여, 우리를 영원토록 구원하시는데, 그리스도는 삶과 죽음 가운데서 행하신 것과, 고난 당하심에 의해서, 우리가 그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도록 하신다.”
위에 서술된 것을 다시 한번 요약하면, 그리스도의 순종은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능동적 순종 active obedience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계시 된 하나님의 계명들을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지켰다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의인이다. 수동적 순종passive obedience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데까지 복종하신 것을 말한다. 수동적 순종 혹은 소극적 순종이라는 용어를 오해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된다. 마치 그리스도가 힘없는 희생제물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동적 순종은 오히려 그리스도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죄를 위해서 속죄 제물로 자신을 기꺼이 드리시고자 하셨던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계속)
김재성 박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개혁주의 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칼빈의 신학사상과 정통개혁신학의
흐름과 주제들과 주요 신학자들을 추적하여 소개하는데 앞장서 왔다.
현재는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명예교수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