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당하심과 십자가의 죽음은 수동적 순종이다
둘째 아담으로서 십자가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대속적 죽음을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수동적 순종이라고 규정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화목제물이 됨으로써 죄의 사면과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전가를 가져다주는 칭의론의 핵심적인 근거가 된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십자가 위에서 희생제물로 자신을 드리기까지 고난당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기꺼이 자신을 바치신 것임을 강조하면서, "수동적 순종”이라고 명명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고난과 희생적 죽으심으로 새언약의 대표이신 그리스도가 “단번에” 모든 죗값을 다 지불하였고, 구원의 모든 조건을 완성하셨다는 점이다. 우리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의 고난을 더 견뎌내고 희생을 치러야지만 구원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핵심은 제사장 사역의 마지막 부분에서 절정에 달했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마지막 단계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다. 이 마지막 순종적인 희생은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에서 핵심에 해당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분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다.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후 5:21)
16세기 종교개혁자들과 17세기 정통신학자들은 칭의교리를 매우 중요한 기독교의 핵심으로 다루었다. 로마 가톨릭의 왜곡된 선행사상과 공로주의를 바로 잡기 위해서 루터가 제시한 칭의론을 거의 모든 종교개혁자들이 구원론의 근본교리로 받아들였다.
존 칼빈은 “어떻게 그리스도가 죄를 파괴해버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분리를 폐지시켰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친절한 호의를 가지시게 하였는가?”라는 문제 앞에서 “그리스도의 총체적인 순종의 삶으로 하신 것”이요,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순종은 그리스도의 죽음이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의 순종의 대속적 성격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통을 참고 이겨내면서 항상 성령과 함께하셨고, 죽기까지 성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순종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인간은 죄와 저주 가운데 던져지고 말았으나,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하셨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빌립보서 2장에 담긴 기독론에서 핵심사항이자, 신약성경 전체에서 둘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온전한 순종이었다.
둘째 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의 불순종에 대조적으로 순종과 희생을 하나님께 드렸다. 예수님의 순종은 그냥 혼자만의 성실한 삶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의 성격은 인류를 “대리하는 순종 vivicarious obedience "이요, 특징은 “희생적 순종 sacrificial obedience”이다.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오셔서 험한 세상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성취하셨는데, 바로 순종이다. 그 순종이 믿는 자들을 구원함에 이르게 하는 근원이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히 5:7-9).
예수님은 둘째 아담으로 오신 분으로서 죄가 없는 분이시며, 대속적 죽음을 당하셨다. 물론 엄청난 희생과 인내가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반 사람들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당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은 대속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속죄제물을 대속의 제물로 바쳐온 유대인들의 제사가 마지막 날에 단 한 분 중보자 스스로의 결단으로 단번에 성취되었다(히 7:27, 요 10:17-18).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창세기 2장 17절에, 죄에 대한 보응은 죽음이라고 선언되었으며,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따라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우리를 위해서 죄인과 같이 되셨다(고후 5:21). 사도 바울이 여기서 함축하는 바는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죄인처럼 취급을 당했다는 의미이다. 우리들의 죄악이 그분에게 전가되어졌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이다(고전 15:3).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5번과 16번은 낮아지셔서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저주받으심을 요약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우리들의 빚을 갚아주셔야만 했다. 그것은 우리 자신들이 죽음에 이르더라도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빚이다.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고자 그리스도는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방법으로 죽음의 형벌을 감당하였다.
돌트 신조 2장 3항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죄에 대한 가장 완벽하고도 유일한 희생이며 만족이요, 무한대한 가치와 존귀함이 있으며, 모든 세상의 죄악들을 대속하기에 넘치도록 충분한 것이다"고 고백하였다. "죽기까지 순종하심은 엄청난 사태가 닥쳐옴을 의미한다. 죽음이 지배하는 세계, 사망이 다스리는 곳에서 삼일 동안이나 그리스도께서 남겨진 것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가장 깊은 처절함과 비통함과 치욕을 당하시고자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신 것이다. 죽음과 지옥의 모욕, 수난의 가장 비참함을 친히 경험하시고, 부활과 승천으로 승리하신 구세주가 되셨다(벧전 3:19,22).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 믿음을 가지고 그에게 연합된 성도들에게 전가되어졌음을 고백한다. 존 머레이(1898-1975)는 그리스도의 순종의 두 가지 측면들, 죄의 사면과 의로움의 전가를 모두 다 강조하였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순종이야말로 그저 하나의 성경적 교리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구원의 혜택을 누리게 하고자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집약하는 “큰 구조”라고 강조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순종의 사역이라고 보았고, 그 용어를 사용했다. 또한 그 순종이 지적하고자 하는 개념은 전체적으로 광범위하게 널리 확산되어 있으며, 전체를 통괄하는 원리임을 충분히 입증하도록 너무나 자주 언급되어 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칭의교리와 의로움의 전가를 받는다는 교리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모두 다 자발적이며, 자원하는 것이며, 능동적이다. 하지만, 그가 순종하고자 할 때에,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심각한 고통, 모욕, 살이 찢기는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
신약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애 동안에 모든 율법을 준수하고 완벽하게 성취하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였음을 기술했다. 바울 사도는 반복적으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순종하셨다고 강조했다 (고후 5:21). 그리스도는 자신을 "우리를 위해서" 주셨고(딛 2:14),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엡 5:2, 살전 5:10).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저주를 받으셨다(갈 3:13).
종으로서의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절정을 이뤘다(마 20:26-28). 이러한 희생적이며, 대속적인 죽으심으로,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가져다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대변하는 개념이 "죽기까지 순종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거절을 당하고 짓밟히는 모욕을 참아야만 했고, 마침내 목숨을 잃어야만 하는 수난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버려졌으며, 죽임을 당했다(행 2:23, 5:30).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하고 의로운 분”(행 3:14)이지만, 장차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 계셨다(막 10:33,34)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전혀 죄가 없는 분이시다(히 4:15).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이러한 일을 마치기까지 전 생애 동안에 그리스도는 왕이 아니라 자신의 순종으로 성취하였다. (계속)
김재성 박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개혁주의 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칼빈의 신학사상과 정통개혁신학의
흐름과 주제들과 주요 신학자들을 추적하여 소개하는데 앞장서 왔다.
현재는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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