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장 합동 이대위 결정은 어리석은 짓인가? ①
‘잡설雜說’을 주장하는 이단들도 {성경}을 가지고 있다.
{바른 믿음} 정이철 <칼빈, 청교도(웨신서), 바빙크, 벌코프, 박형룡 … 완전한 성경 이해를 가진 사람은 없다.>
https://archive.ph/qWSOQ
다음은 위 링크 글에서 옮깁니다. 들여쓰기 없이 ‘-’를 써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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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은 (단지 이론상으로) 구약의 율법에게 영생을 주는 능력이 있었다고 주해하였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율법을 통해 영생을 얻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칼빈은 그 이유를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불완전하게 지켰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율법을 100% 완전하게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율법을 통해 영생을 얻는 것이 가능한데, 그 정도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이 없으므로,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사람이 나타나지 못했다는 것이 칼빈의 해석이었다.
칼빈의 주장을 조금 바꾸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완벽한 율법준수이고 또 하나는 완벽한 율법준수를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는 것이다.
…(중략)…
그러니 칼빈을 능동 순종 교리 형성의 역사 초기의 인물로 규정하는 것은 억지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미 칼빈이 율법을 대충 지키지 않고 100% 완벽하게 지킨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적 가능성을 여는 말을 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청교도 능동순종주의자들은 율법에게 구원을 주는 기능을 말한 칼빈을 자기편으로 당기기 좋은 여건을 차지하여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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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믿음} 정이철 <합동, 합신측의 능동 순종 신학 성경적 근거 없다고 판단>
https://archive.ph/LYd0b
다음은 위 링크 글에서 옮깁니다.
그리스도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서 영생의 자격(의로움)을 획득했다는 주장은 1) 율법에게는 죄를 지적하는 기능 외에 의로움을 주는 기능이 없다는 성경의 가르침, 2)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의가 되어주시려고 친히 죄와 무관한 의로운 사람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 3) 그리스도가 우리의 죗값을 자기의 생명으로 대신 지불하심으로 이루어진 죄 용서가 곧 칭의의 근거라는 성경의 핵심적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내용이다.
‘율법은 영생을 주는 능력이 있다.’는 칼빈 선생님 가르침은 골 빈 가르침일까요? 그동안 저는 ‘혼란스러운 서철원 신학과 이를 맹종하는 정이철, 정진남 신학’을 비평하는 여러 글에서 {성경}을 근거로 ‘율법은 의義(생명, 영생)를 주는 기능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즉, ‘온전한 율법준수는 생명(영생)의 길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담(人)으로 이 세상에 성육하신 그리스도, 신인神人이신 그리스도, 무한無限한 하나님이시지만 유한有限한 우리와 한결같이 유한有限한 인성人性을 입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길을 걸으심으로써 ‘온전히 지키면, 의義를 얻는다. 의義를 얻어 영생을 얻는다.’는 율법의 약속,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부활하셨음을, 영생을 얻으셨음을 밝혔습니다. 제 짧은 혀ㅡ{Daum} 카페 {플레비언 교회개혁연대} 카페지기 주검보 님 용어로는 “혓바닥”ㅡ가 아프고 닳도록….
그런데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까닭으로 성경 지식과 신학 지식이 짧은 정이철은 여전히 “율법에게는 죄를 지적하는 기능 외에 의로움을 주는 기능이 없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검보 님은 정이철 이 이단성 있는 주장에 함께하며 서철원 목사님과 정이철과 인터뷰한 내용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림으로써 이단성 있는 서철원 신학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분별력 없는 까닭으로 ‘이단 지방교회’와 ‘{킹제임스 성경} 제일주의 말씀보존학회 이단 이송오 목사의 성경침례교회’를 거친 신앙 생활의 여정, 옛 버릇 그대로 분별력 없는 짓, 골 빈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칼빈 선생님께서는 {기독교 강요 제3권} [14장] <13항>에서 “하늘에서는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의義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은 ‘존 칼빈 {기독교 강요 中} 원광연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 2003)’ 321쪽~321쪽에서 옮깁니다. 들여쓰기 없이 ‘-’를 써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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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잉여 행위’의 논리는 죄의 위중함을 망각하는 것임
이런 일들이 사실이라면, 우리 행위들 자체로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기뻐하시도록 만들 수가 없고, 그 행위들 자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의義로 가려지는 정도만큼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죄 사함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행위들에 대해 생명을 상급으로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레 18:5)는 선언만을 하시며, 게다가 모든 일을 다 실행하지 않는 자들에게 그 유명한 저주(신 27:26. 갈 3:10)를 행하고 계신 것이다. ‘부분적으로 의義를 행해도 괜찮다는 사상은 거짓이라는 것’이 이런 진술들을 통해서 충분히 드러나고 남음이 있다. 하늘에서는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의義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중략)…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경우가 아니면 결코 행위의 의義를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주께서 자주 증거하고 계신데도, 우리에게 의義가 없으면서도 우리에게 조금은 자랑할 거리가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서ㅡ즉, 자랑거리를 전부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싶어서ㅡ 몇 가지 행위들을 자랑하며 그것으로 우리의 모자란 의義를 보속補贖하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짓인가?
이른바 “보속補贖”에 대한 논리는 이미 확실하게 무너졌으므로 행여나 꿈속에서라도 그런 생각을 떠올려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자들은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저주스러운 것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람의 의義 전부를 함께 다 모아서 쌓아 놓는다고 해도 단 한 가지 죄에 대해서도 보속補贖할 수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아야 옳았다.
…(하략)…
“하늘에서는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의義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데, 물론 그 의義를 온전히(완전히) 이룬 사람(아담)은 우리와 한결같은 유한有限한 인성人性을 입으셨지만 죄의 본성을 입은 우리와 다르게 성령으로 죄 없이 마리아 뱃속에 잉태되신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신인神人으로서 지혜 그 자체이셨지만 지혜가 날마다 자라신(눅 2:52) 분, 신인神人으로서 구원과 생명(영생) 그 자체이셨지만 우리 죄를 짊어진 종(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그 유명한 저주”를 당하심으로써 무덤에 묻혀, 죽음(사망)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으셔야 할(히 5:7) 분이셨습니다. 마지막 아담(人)으로서 중보 사역을 담당하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딤전 2:5)이셨습니다. 생명의 길로서 율법준수의 길을 흠 하나 없이 온전히 걸으심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마지막 아담(人)이셨습니다.
위에 링크한 정이철 두 글은 정이철 이단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입니다. 정이철 이단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임에도, 이단성 판정 근거가 서철원 신학인 골 빈 예장 합동 이대위는 {성경}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정이철 이단성을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선생님이시여,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쭸다. 예수께서 “어찌해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대답하셨다. (마 19:16~17)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해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쭸다. 예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돼 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물으셨다. 그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해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했나이다.” 대답했다. 예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셨다. (눅 10:25~28)
주님께서 “옳도다.” 하신 말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주님 말씀은 칼빈 선생님 말씀으로는 “하늘에서는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의義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씀으로, 이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서철원 목사님은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⑤: 구원론} (서울: 쿰란출판사, 2018)’ 121쪽에서는 “본래, 의義는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켜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죄인은 범죄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바른 주장, 칼빈 선생님과 똑같은 주장을 하셨다가 ‘서철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서울: 쿰란출판사, 2019)’ 49쪽에서는 “율법은 살리는 기능이 없다.”는 엉뚱한 주장을 해 버리십니다.
이토록 좌충우돌 혼란스런 신학을 전개하신 서철원 목사님, 그분 권위와 이를 맹종하는 정이철 권위는 우리 개혁신앙의 선조 칼빈 선생님 권위를 하찮게 여기는 권위입니다. 그들 권위는 바울 사도 권위와 주님 권위를 뛰어넘는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말하기는 하지만 그들 권위는 {성경}의 권위를 뛰어넘는 권위로, 이 권위에 종노릇을 한 예장 합동 이대위는 ‘칼빈 선생님이 창시자인 개혁 교회 정통 교리, 그리스도 능동 순종 교리’를 “이단 사상”으로 단죄하는 듣보잡 짓거리, 골빈 짓거리를 한 것입니다.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켜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9: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義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義로 살리라.” 했거니와 (롬 10:5)
예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셨다. (눅 10:28)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는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됐도다. (롬 7:10)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3)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분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딤전 3:16 상)
주께서 생명의 길을 제게 보이셨으니, (행 2:28 상)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분이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 2:24)
그분께서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고, 그분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으셨느니라. (히 5:7)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오는 11월 10일에 ‘이단 정죄 백전백승 기념, 금의환향錦衣還鄕(?)’해 우리나라에서 한 달 동안 머물 예정이라는 미국 시민 정이철이 “성경의 가르침” 운운했는데, 골 빈 이단들에게 {성경}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성경}이 있더라도, 개혁 교회 정통 교리인 그리스도 능동 순종 교리를 이단시한 정이철과 서철원 목사님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성경}에서 보고 싶은 구절만 보고, 그 구절들만을 내세워 자신들만의 교리를 확립해 개혁 교회 정통 교리를 이단시하기에 이단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철원 목사님과 정이철 잡설雜說’을 예장 고신 총회와 예장 합신 총회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잠언]에는 “어리석은 놈”, “미련한 놈”, “지각없는 놈”, 즉 ‘머리가 빈 놈, 골 빈 놈’이라는 독설이 있습니다. 이 독설은 [시편]에도 있습니다. 이 독설을 주님께서도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미련한 놈, 머리가 빈 놈)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한다. (시 14:1 상)
자기 형제에게 “라가”라고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공회에 잡혀가게 되며 “바보”라고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불타는 지옥에 던져질 것이다. (마 5:22 하)
{바른 성경}에 “라가”를 두고 “‘머리가 빈 사람’, ‘멍청이’이라는 아람어 욕설.”이라는 ‘각주 해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맏형님이 되신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24장 25절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형제)를 “미련한 자”ㅡ{개역개정 성경}ㅡ, “어리석은 자”ㅡ{바른 성경}ㅡ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께서도 자신의 사도직을 부정하는 고린도교회 교인(형제)들을 ‘어리석은 자들’로 여기셨고, 다른 복음에 미혹된 갈라디아교회 교인(형제)들을 두고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예장 합동 이대위 넋 빠진 짓거리를 보며 떠오른 말씀이 있습니다.
미련한 놈을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겨지지 아니하느니라. (잠 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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