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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채동

양심에 화인 맞은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 목사들

by 깨우는자동훈 2022. 11. 1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그가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눅 17:1~2)

 

 

{바른 믿음} 정이철 <기진협,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한 토론>

https://archive.ph/JNfRb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교리에 대한 토론”??????? 이 토론을 주도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고경태 목사일 것인데, 예장 합동 총신신대원에서 서철원 목사님 지도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고경태 목사는 예장 합동과 총신신대원과 스승 서철원 목사님을 욕 먹이는 꼴뚜기 일에 그만 나서기를 바란다. 그동안 나는 앵무새처럼 “‘능동 순종’이라는 용어만 나오지 않을 뿐 {기독교 강요}와 ‘존 칼빈 {갈라디아서 강해}’에 개혁 교회 정통 교리 ‘그리스도께서 능동(율법준수) 순종으로 얻으신 의와 그 의의 전가’ 교리는 명명백백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이 아프도록 밝혔다. 또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서철원 신학’을 두고서도 몇 차례 논술했다. 즉, 서철원 목사님이 초기에는 ‘그리스도 능동 순종과 그 의의 전가’를 가르치시다가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대립 관계로 보는 세대주의 신학 잔재로서, <산상보훈> 적힌 “옛사람”을 “모세율법”으로 그릇되게 해석한 자신의 초기 신학’에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부정하는 새 관점 신학’을 뒤섞어 개혁 교회 정통 교리를 이단시하심으로써 스스로 이단이 돼 오늘의 사단事端을 일으키셨다는 사실도 밝혔다. 특히, 개혁 교회 정통 교리 ‘그리스도 능동 순종’ 교리를 부정하는 신학이 새 관점 신학임에도,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가르치는 개혁 신학을 두고 “이런 신학을 새 관점 학파라고 하는데,”라는 웃픈 주장, 개혁 교회 조직신학 박사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거짓증거를 하셨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고 간다.”는 속담대로, 진정 스승 서철원 목사님 명예를 위하는 제자라면, 가만히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가만히 못 있겠으면, 누가복음 17장 1절~2절을 명심해 이번 토론회에서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부정한 새 관점 신학이 옳다. 그리스도 능동 순종은 인정했으나 그 의의 전가는 인정하지 않은 알미니안 신학을 잇는 새 관점 신학이 성경과 합치하는 신학이고,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가르치는 개혁 신학은 이단 신학이다.”고 선언하기를 바란다. 이 선언을 하면, 그나마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부정한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 신학이 옳은 줄 알았던 목사들이나 신자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실족한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 신학’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ㅡ고경태 목사가 {페북} 그룹 {형람서원}에 내 글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이창모 목사는 정신 차리기 바란다. ②: “까지”가 ‘십자가 보혈’만을 뜻하는가?>1)를 링크해 “박채동 선생…. 제가 우리 그룹에서 강퇴했지만, 그의 글을 꾸준하게 읽고는 있습니다.”고 밝혀서 하는 소리다.ㅡ

 

    율법을 어긴 사형수가 사형 집행을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채워졌다고 해서, 만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사형수에게 “너는 죗값을 치른 의인이다.”고 선언하시는가? 선언하셔서 그 죄인을 다시 살리시는가?

 

    예장 합신 김병훈 교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2)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만일 율법에 불순종하는 일을 행하신다면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의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은 분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일이 있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대리속죄를 위한 희생제물로서 자격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영생의 권리도 상실하게 되고 맙니다.

 

    수준 낮은 Wolf이철 주장(논리)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Wolf진남 같은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 Wolf들ㅡ고경태 목사 포함ㅡ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세율법에 온전히 순종해 자신을 위해서도 의를 획득하셔서 영생의 권리를 가지게 되셨다.”는, “그리스도 스스로를 위한 영생의 권리”를 말한 우리를 이단시했다. 그 근거는 {기독교 강요 제2권} [17장] <6항: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공로를 얻으신 것이 아님>이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최고 권위로서 {성경}’은 ‘{성경}을 해석해 {성경}의 교리를 집대성한 {기독교 강요}’보다 우선한다. 그러함에도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 Wolf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능동(율법준수) 순종으로 들으심(구원, 부활의 생명, 영생)을 얻으셨음’을 증거한 히브리서 5장 7절보다 {기독교 강요 제2권} [17장] <6항> 제목이 우선한다.

 

그분께서는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고,

그분 경건하심 때문에 들으심을 얻으셨습니다.

(히 5:7)

 

    “그리스도 스스로를 위한 영생의 권리”를 말씀하신 김병훈 교수님이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 목사들 주장대로 “이단”이면, 경건하지 못한 자들(율법을 범한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자신의 구원(부활의 생명, 영생)을 위해 피땀 흘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신 마지막 아담(人) 그리스도를 증거한 [히브리서] 저자 역시 “이단”이다. 물론, 히브리서 5장 7절을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증거하는 구절로 내세우신 헤르만 바빙크 목사님3)도 “이단”이다. 또한 독립개신교회 최낙재 목사님도 “이단”이다.

 

    그러므로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 목사들은 지난해 2월 예장 합동 이대위 세미나에서 ‘스승 죽산 박형룡 신학’만이 아닌 ‘헤르만 바빙크 신학’을 단죄하신 스승 서철원 목사님을 받들어 ‘우리 영생만이 아닌 자기 영생을 위해서도 능동(율법준수) 순종을 하신 그리스도’를 말씀하신 최낙재 목사님도 “이단”으로 짓밟고 지나가기를 바란다. 되풀이 인용하는 강설이지만, 다음은 ‘최낙재 {하나님의 언약과 유아세례} (서울: 성약출판사, 2012)’ 60쪽~61쪽에서 옮기는 강설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말씀을 친히 다 지키셔서 생명을 얻으셨고 오히려 넘치게 지키셨습니다. 그분께서 하나님 명령을 지켜야 할 의무가 없으심에도 친히 사람이 돼 지키셨기 때문에 넘치게 지키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하나님께서 불의하지 않으셔서 그런 자들에게 상급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니까 참 감사한 일이지만 피조물로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지켜야 할 뿐입니다. 인간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이상이십니다. 그런 분으로서 인간이 지켜야 할 모든 일을 다 지키셨기 때문에 생명을, 의를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그 생명을 얻으신 것뿐 아니라 이제 그것을 자기에게 속한 자들,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도 주실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순전純全하시므로 의를 얻고 생명을 얻으셨는데, 그것은 우리를 위해 얻으신 것입니다.

 

    되풀이해 옮기는 것이지만, 다음은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제3권} 박태현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1)’ 463쪽에서 옮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하지만 개혁파는 그와 같이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인간으로서 율법을 준수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의무를 확실히 지니셨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피스카토르 견해를 정당하게 거부했다. 왜냐하면 첫째, 성경은 그리스도 전 생애와 사역을 단 하나의 전체로 이해하고 그분께서 자신을 위해 완수하신 삶의 순종과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죽음의 순종을 결코 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구원(부활의 생명, 영생)을 위해서 간구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자신을 위해① 피땀 흘려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신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지키면, 살리라. 영생을 얻으리라.”는 행위(생명)언약, 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②서도 능동(율법준수) 순종을 하신 그리스도’께 하나님 자신을 위해③ 구원을 베푸신 분이시다. 물론, 하나님 자신을 위해④ 베푸신 그 구원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⑤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이기도 하다. 그러함에도, 아직도 예장 합동 꼴뚜기 바리새파 Wolf들과 김문정 집사는 최낙재 목사님 강설에 쓰인 “자신을 위해”와 내가 다섯 번 쓴 “자신을 위해”를 짓밟아 “이단”으로 정죄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시편 98편 1절부터 먼저 짓밟기를 바란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분께서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분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신을 위해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시 98:1)

 

존 머레이

“진리의 자기주장은 장엄하다.”

 

김홍전

“우리가 진리를 보호하고 수호하는 게 아니라, 진리가 우리를 보호하고 수호한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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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이창모 목사는 정신 차리기 바란다. ②: “까지”가 ‘십자가 보혈’만을 뜻하는가?>

https://cafe.daum.net/reformedcafe/jMaU/212

 

    2) {기독교개혁신보} 김병훈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http://repress.kr/3719/

 

    3) 다음 글을 참고하라.

 

헤르만 바빙크 <그의 순종은 수동적인 것이었고 동시에 능동적인 것이었다.>

https://cafe.daum.net/reformedvillage/D3ML/242

 

그의 순종은 수동적인 것이었고 동시에 능동적인 것 / 헤르만 바빙크 (1)

제 22 장   성화   하나님의 형상이 지식과 의만이 아니라 거룩함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온전히 회복되려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어야 함은 물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cafe.daum.net

박 채 동

박채동은 1981년 개혁광주신학교(현 광신대학교대학원)

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현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교단에 속한 교회에 성도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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