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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성우

왜 회심준비론(준비교리)에 대하여 오해를 할까?

by 깨우는자동훈 2022. 10. 10.

청교도 신학 가운데 율법의 기능을 설명하고 적용하는 회심준비론 또는 준비교리라는 신학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 20세기 학자들은 청교도를 종교개혁의 은혜 교리를 인간 중심적인 율법주의로 바꿔 버린 최고의 실례로 보고, 그들의 준비교리를 무시했다. 회심준비론을 반대하였던 사람들은 죄인이 죄로 죽어 있고,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어떤 일을 전혀 할 수 없다면(2:1; 8:7~8) 어떻게 회심을 준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들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 또는 오해는 성령께서 준비시키심인간이 스스로 하는 준비에 대하여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회심준비론(준비교리)에 대하여 오해를 하는 것일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육적인 준비 즉 자신이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며 자신을 준비시키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것은 청교도가 아니라 로마 가톨릭 교도와 아르미니우스주의자였다. 분명 그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행의 노력을 통하여 자신을 준비시키고 하나님으로부터 그 결과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가르친 자들이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가톨릭 교도들이었다. 하지만 청교도들은 분명 자신의 자유의지로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그들을 낮추시는 역사를 통하여 더욱 가난한 심령으로 인도해주시는 것을 준비교리로 가르쳤던 것이다.

 

조엘 비키는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531페이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잉글랜드 청교도는 거듭남을 영혼의 그리스도와의 최초의 의식적인 연합과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었지만 네덜란드 제2 종교개혁 신학자들은 거듭남을 초기의 죄에 대한 자각 및 양심과 더 가깝게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이 네덜란드 제2 종교개혁 후기 신학자 가운데 하나인 알렉산더 꼼리(1706~1774)믿음에 대한 준비는 있지만 그것이 거듭나기 전의 준비는 아니라고 가르친 이유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 거듭남을 영혼의 경험 속에서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화란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정수 논쟁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정수 논쟁은 1720년에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에서는 청교도인인 에드워즈 피셔의 현대 신학의 정수란 책을 읽지도 못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설교 또는 그 책에 대하여 권면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고, 교인들이 정수 책을 읽는 것을 목사가 보던지 아니면 알고 있다면 그 책을 읽지 말라고 경고하고 위험성에 대하여 가르치라고 목사들에게 법으로 정해져 있었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1720년 당시에 스코틀랜드 교회 총회에서 만들어진 법이 아직까지 바뀌지 않고 그냥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당시에는 율법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또는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 반 율법주의에 대하여 많은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스코틀랜드 장로교단 안에서는 정수 신학을 심하게 경계하다보니 이상하게도 반 율법주의를 소홀히 하여 더욱 알미니안주의가 매우 성장하게 된다. 보스톤이 이미 이러한 시대의 상황을 보고 거짓 교리에 대하여 대항하여 싸웠던 것이다. 보스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인간이 만든 신조가 아니라 죄인된 인간에게 값없이 주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당시에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에게 나오려면 우선 먼저 죄를 해결하고 나오라고 가르쳤으며, 반 율법주의자들은 죄에 대하여 정죄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

 

반대로 피셔 책인 신학의 정수는 알미니안 성향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현대 신학의 정수라는 책이 멸시를 당했다. 즉 죄인들은 자신의 죄를 해결하고 그리스도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들임을 안다면 죄를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나오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들 정수 주의자들은 귀한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Marrow 논쟁을 통하여 많은 상처를 받은 자들이다.

 

Marrow 논쟁을 배움으로써 목사들은 중요한 4가지를 배울 수 있다.

첫째, 신학의 정수 논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복음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며,

둘째, 구원하는 믿음과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질문이며,

셋째, 복음의 역할과 율법의 역할에 대하여 확실하게 답을 해준다

넷째, 반 율법주의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싱클레어 퍼거슨 교수는 정수 신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정수 신학은 그냥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복음 중에서도 가장 핵심되는 부분을 가르쳤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교리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계시로 나타내시는 하나님 자체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Marrow 논쟁을 표면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이 있으며 그들은 단지 복음을 제시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수주의자들이 주장하고 가르쳤던 그 당시의 모든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단지 복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핵심 부분을 가르치고 책으로 출판했던 것이다.” (싱클레어 퍼거슨 교수의 “Thomas Boston Marrow Controversy”의 강의 중에서)

 

화란으로부터는 거듭남을 영혼의 경험 속에서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였고, 스코틀랜드의 문제는 율법의 역할과 복음의 역할의 문제였다. 오늘날에는 이 두 문제가 확실하게 목사들에게 가르쳐지지 않은 상태에 있기에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거듭남의 역사를 혼동하거나 아니면 무지 가운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신학은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 신학을 접하고 있다. 현대 시대에서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이들의 신학을 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조엘비키와 여러 신학자들은 영국의 청교도 신학과 이들의 신학을 같이 결합하려고 많은 연구를 하고 있으며 많은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현시대를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가 거룩성이 없어지고 신앙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에게 어떠한 성화의 열매가 없다고 다들 지적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성우 목사

정성우 목사는 Jericho College and Seminary를 졸업하고,

칼빈과 청교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는 인천 청라지역에서 개혁주의 교리에 입각하여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안에 하나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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