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청교도'라고 하면 제일 먼저 ’교리'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청교도들이 언제나 교리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설교하면서도 교리를 강조하였고, 교리를 해설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또 교리문답을 작성해서 어린아이들에게도 교리를 가르치고 암송하게 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교리에만 집착하거나 교리를 경건의 최종 목표로 추구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들이 교리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아야만 삶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을 섬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리를 소중히 여기기는 했지만 결코 교리만 추구하지는 않았다.
토마스 맨튼은 이렇게 말한다.
"교리는 활을 당기는 것에 불과하다. 한편 적용은 과녁을 맞추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리를 아는 데는 지혜롭지만 구체적으로 그 교리를 적용하고 실천하는 데는 한없이 어리석은지 모른다(롬 1:22 참고), 단순히 머리로만 알고 있는 교리는 생각이나 관념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지만,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하는 교리는 열매를 맺는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교리를 알려 주고, 필요한 적용과 실천 사항을 알려 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들을 적용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다.“
어떤 사람들은 '청교도' 하면 제일 먼저 ‘지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청교도들이 지성을 굉장히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리처드 십스는 참된 지식이 없다면 마음은 결코 선할 수가 없다(잠 19:2 참고)"라고 선언한다. 그만큼 청교도들은 지성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청교도들이 결코 지성에 집착하거나 지성 그 자체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교도들은 경건의 실천을 무한히 강조하였다. 십스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은 바르게 믿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통하여 경건한 원칙들을 배우고 그 원칙에 따라 경건한 삶을 살아간다.“
이렇듯 참된 지식은 반드시 마음의 의지와 정서를 거룩하게 만드는데, 이렇게 지성과 의지와 정서가 모두 거룩하게 되고 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손과 발의 실천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청교도들의 확신이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청교도'라고 하면 제일 먼저 '마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왜냐하면 청교도들이 본질적으로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 오웬은 “순결한 마음은 모든 경건의 근원이요 생명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청교도들이 결코 마음에만 집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삶의 경건, 또는 경건의 실천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경건을 형성하였다. 조지 스윈녹은 이렇게 말한다. “물론 경건의 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청교도들은 마음의 경건과 삶의 경건을 함께 추구하되, 삶의 경건을 궁극적인 목표로 했다. 또 스윈녹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은 마음의 경건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것은 삶의 경건이다. 이 두 가지 경건을 함께 지닌 사람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환경, 모든 장소에서 그리스도인의 경건을 실천해야 한다. 빌 4:8은 이렇게 말씀한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에서든 또는 어떤 문제에 관해서든 진실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것들을 생각하라는 것은 마음과 사상의 문제이다. 내 안에 영적인 것을 묵상을 통해 채우지 않으면 9절에서의 의지까지 나오지 않게 될 것이다. 또는 지식적으로는 개혁주의이지만 실천적, 적용적으로는 알미니안의 의지가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경건이란 ‘성령에 의해 참으로 거듭난 신자가 오직 성경을 규범으로 삼고 성경 연구와 묵상과 기도라는 개인적인 은혜의 방편들과 설교와 주일 성수와 성도들의 교제라는 공적인 은혜의 방편들을 활용하여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이었다.
또한 경건의 실천은 반드시 올바른 동기와 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그것을 행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준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다시 말해서, 모든 경건 실천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과 동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디모데후서 1장 13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 경건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시 116:10, 갈 5:13 참고). 성경은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이며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이 아무 유익도 없고 헛되다고 강조한다(롬 14:23, 고전 13:3 참고).
제임스 패커는 청교도들이 강조했던 지성과 관련하여, “청교도들의 지식은 단순히 이론적인 정통이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모든 것들을 구체적으로 추구하였다”라고 말한다. 또한 청교도 경건은 내면으로만 파고드는 신비주의 영성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청교도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부어 주신 은혜가 손과 발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청교도 경건은 철저하게 실천적인 경건이었다.
여러분은 청교도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힘쓸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청교도가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청교도가 그렇게 한 것처럼 한 눈을 영원에 고정시키고 살 수 있겠는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
*참고문헌
이태복, 『영성 이렇게 형성하라』, (서울: 지평서원, 2010)
조엘 비키,마크 존스,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김귀탁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이동훈 목사는 안양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Th.M) 조직신학 석사과정 중에 있으며,
현재 마르투스 출판사 대표 및 예수안에 하나교회 교육목사로 섬기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