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까지 도돌이표 비평문을 썼던 일은 벽창호 Wolf이철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라서 참 힘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그리스도 능동 순종에 관한 예장 고신 총회 발표’를 기다리며 머리를 식혔다. 그런데 또 도돌이표 비평문들을 쓰자니, 참 힘들다.
{바른 믿음} 정이철 <고신 교수회, 능동 순종 핵심 모르고 한국 교회에 혼란만 가중시켰다.>
다음은 위 링크 글에서 옮기는 글이다. 오늘도 자신의 짧은 신학은 모른 채 내가 세례를 받은 모母 교단 예장 합동을 욕 먹이는 꼴뚜기 짓에 여념이 없는 한심한 놈 글 전문全文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고신 교수회가 그리스도의 능동 순종 교리에 대한 고신의 입장을 발표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엉뚱한 변죽만 울렸다. 능동순종 논쟁의 핵심은 율법준수가 영생의 기준이라는 내용이다. 땅의 임시적 육체로 창조된 아담이 율법을 지키는 공덕을 쌓으면, 하나님이 그것에 기초하여 그의 몸을 하늘의 몸으로 변화시켜 하늘의 영생을 누리게 했을 것이라는 이상한 사변에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행위언약’이라고 부르는 내용이다.
능동 순종 교리는 아담이 율법을 지키는 공덕을 만들지 못하여 하늘의 영생을 얻지 못했으니, 그리스도가 대신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여 하늘의 영생의 자격(의)를 획득하였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하여 우리도 의인 되고 또한 하늘의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능동 순종 논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 핵심을 직접 성경에 기초하여 다루지 않을 것이면, 차라리 나서지 않는 것이 교회를 돕는 길이다.
능동 순종 문제를 연구한다면 필연적으로 다음의 주제들이 다루어져야 한다.
1. 아담은 과연 임시적인 육체의 생명으로 창조되었고, 율법준수의 공덕을 쌓으면 하늘의 몸으로 변화되어 하늘의 영생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는가?
2. 그리스도가 아담 대신 율법을 지켜서 영생의 자격을 얻었다는 것이 능동 순종의 핵심 이슈인데, 율법을 준수하면 영생의 자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이 보장하는 하나님의 약속인가? 영생의 자격을 얻기 위해 율법준수가 필요하다는 신학은 과연 성경적 근거가 있는가?
3. 하나님의 성육신의 목적은 친히 우리의 의가 되시기 위함인가 아니면 사람 대신 율법을 지키기 위함인가?
4. 그리스도께서 그리 율법을 잘 지켰는데 왜 율법주의 바리새인들을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돌로 치려했었는가? 사도들이 능동 순종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면 왜 율법주의자들이 그들을 죽이고 박해했는가?
고신 교수회는 이러한 핵심에 대해 성경에 기초하여 논의하지 않았다. 단지 “그리스도가 순종하였다!”,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고백서에 나와 있다!”, “우리도 지켜가야 한다!”,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은 우리 고신이 가르치는 바이다.’ … 등의 변죽만 울렸다. 능동 순종 시비로 곤경에 처한 다른 교수들을 돕기 위한 보고서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히려 한국 교회에 혼란만 가중시켰다.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신학이 짧은 이 한심한 놈은 “능동 순종 문제를 연구한다면 필연적으로 다음의 주제들이 다루어져야 한다.”며 “1. 아담은 과연 임시적인 육체의 생명으로 창조되었고, 율법준수의 공덕을 쌓으면 하늘의 몸으로 변화되어 하늘의 영생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는가?”를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한심한 놈 스승 서철원 목사님 글을 또 인용한다. 그동안 수차례 옮긴 글로서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제7권: 종말론} 128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처음 창조 시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 아우구스티누스가 가르친 대로 자연적인 몸이 영적 몸으로 변화됐을 것이다. …(중략)… 처음 창조된 몸이 영적 몸으로 변화되는 것은 자연적 과정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영생에 이르도록 영적 몸으로 변화케 하시는 것이다.
문해력이 낮은 이 한심한 놈은 “처음 창조 시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으면”에서 ‘처음 창조 시 아담이 지키면 살리라(영생을 얻으리라)는 축복과 지키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저주를 담은 율법, 선악과 금령의 행위(생명)언약에 순종(율법준수)했으면, 아우구스티누스가 가르친 대로 자연적인 몸이 영적 몸으로 변화됐을 것이다.’를 독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스승 서철원 목사님은 “영생에 이르도록 영적 몸으로 변화케 하시는 것”이라 하심에도, 난독증 환자인 이 한심한 놈이 ‘영생을 누리는 영적 몸이 “처음 창조된 몸”이었다. 범죄 전 아담의 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도돌이표 인용이지만, 다음은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하나님의 도성} 조호연, 김종흡 역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9 2판 2쇄)’3) 644쪽~648에서 옮기는 글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그러나 저 첫 사람은 땅에서 났고 흙에 속한 존재(고전 15:47)였으며 그것을 형성하는 것은 살아있는 영혼이었고 살려주는 영이 아니었다(고전 15:45). 살리는 영은 그가 순종하는 공적功績으로 받게 될 때까지 보류됐다. 그러므로 첫 사람 몸이 영혼적(animalis, 육적)이었지만 영적(spiritalis)이 아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첫 사람이 죄를 짓기 전에 가졌던 것과 같은 몸을 부활 시에 갖게 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다.”는 말씀도 죄를 지은 후에 있었던 일에 비춰 해석해서는 안 된다. 첫 사람은 죄를 짓기 전에 신령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죄 때문에 그것이 변해서 육의 몸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됐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우리의 위대한 사도의 말씀에 너무도 유의하지 않는 것이 된다. 사도는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영혼)이 됐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15:44~45) 했다. 이 일은 사람의 처음 상태였지,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있은 일이 아니다. 사람의 이 처음 상태에 관해서 바울은 율법(창 2:7)의 이 증언을 인용하면서 육의 몸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한 것이다.
위 아우구스티누스 선생님 글에는 ‘행위(생명)언약’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는 위 아우구스티누스 선생님 글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고백한 ‘행위(생명)언약’, 개혁 교회 정통 교리인 ‘행위(생명)언약’ 교리를 독해할 수 있다. 그런데 “살리는 영은 그가 순종하는 공적功績으로 받게 될 때까지 보류됐다.”는 아우구스티누스 선생님 가르침을 두고 신학이 짧을 뿐만이 아니라 난독증 환자인 이 한심한 놈은 “율법주의(행위 구원)는 사도 바울이 목숨 걸고 막았던 거짓 신학이다.”며 아우구스티누스 선생님까지 이단시하는 꼴뚜기 짓을 할 것이다. 행위 구원론자 펠라기우스를 대항해 힘써 싸우심으로써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사도께서 말씀하신 행위 구원의 “다른 복음”을 물리쳐 참 복음을 수호하는 일’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신 아우구스티누스 선생님이심에도….
수많은 개혁 신학자를 이단시한 이 한심한 예장 합동 꼴뚜기가 아우구스티누스 선생님까지 이단시하는 꼴뚜기 짓을 할지라도 스승 서철원 목사님을 이단시하는 꼴뚜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수차례 옮겼던 도돌이표 인용이지만, 자칭 “맥도날드 신학자”, 이 한심한 놈이 “맥도날드에서 언월도로 삼아 읽었다.”는 {서철원 박사 교의신학 전집}, 이 전집에서 {제4권: 그리스도론} 264쪽에서 옮기는 글이다
선악과 계명은 생명과 사망을 결정하는 법이어서 지키면 살고 범하면 죽게 됐다. 곧 하나님을 섬기면 생명에 이르고 섬김을 거부하면 죽게 정해졌다.
글이 길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까닭으로, 예장 합동 꼴뚜기 이 한심한 벽창호가 “능동 순종 문제를 연구한다면 필연적으로 다음의 주제들이 다루어져야 한다.”며 제시한 글, “2, 3, 4”로 번호를 붙인 주제들은 다음에 다룬다.
PS: <이철아! 이철아! 이 한심한 놈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①>1)과 <이철아! 이철아! 이 한심한 놈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②>2)와 <조폭다운 예장 합동의 품격과 신사다운 예장 고신의 품격>3)을 이 한심한 놈 {유튜브} 동영상 댓글란에 링크해 줬다. 물론, 예장 합동과 우리나라 개혁 교회들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 한심한 벽창호는 벽창호답게 그 댓글들을 감추기에 바빴다.
박채동은 1981년 개혁광주신학교(현 광신대학교대학원)
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현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교단에 속한 교회에 성도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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