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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동훈

21세기에 우리는 왜 청교도를 알아야 하는가.

by 깨우는자동훈 2022. 8. 19.

화려하지 않은 검은색 계열의 옷을 즐겨 입으며 이 세상의 즐거움을 단절해버리는 금욕주의자,

숨이 막힐 정도로 엄격한 윤리적인 잣대를 가지고 규제하는 결벽주의자,

독선적이며 극단적으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며 율법을 강조하는 율법주의자.

일반적으로 청교도하면 떠올리는 부정적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칼빈주의 청교도는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왜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가 한국교회에 만연할까?

 

그 이유는 실제로 한국에 소개된 청교도가 긍정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칼빈주의 청교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추수 감사절에 종종 소개되는 청교도의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정착한 분리주의자 청교도들이다. 또한 한국에 주로 알려진 청교도는 알미니안 계열과 퀘이커 계열에 청교도인데 마치 정통 칼빈주의 청교도로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본 글은 청교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칼빈주의 청교도의 사상 및 원리를 소개하는데 목적이 있다. 또한 500여년 전에 옛 보화를 발견함으로 현재 우리의 영적인 상태와 우리가 서 있는 영적인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점검하는데 있다. 영적 거인으로 비유되는 청교도의 신앙과 삶을 통해 우리의 신앙과 삶이 얼마나 난쟁이와 같은지, 얼마나 성경적 기준으로부터 하향 평준화가 되었는지를 보게 된다. 이는 상대적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오히려 그들의 피와 땀의 결실인 교리와 설교집, 사상 등을 통해 거인의 어깨 위로 올려주는 보화들을 새롭게 재발견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특별히 청교도들의 주옥같은 글은 시대를 초월한 경건의 보화가 가득 담겨져 있다. 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개혁주의 신학과 경건, 교리와 삶의 일치를 꿈꿔왔던 역동적인 신앙을 추구한 그들의 신앙관은 오늘날 교회의 구원관이 얼마나 변질되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잘못된 칭의론으로 인한 행위인 열매를 강조하는 행위주의적 신앙, 반대로 거룩의 열매가 없어도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구원파적 신앙으로 교인들의 나태와 방종을 조장하며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하고 타락케 하는 교리로 남용하는 실수를 범한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청교도를 올바로 알아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청교도에게 있어서 신학의 목적은 경건에 있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참된 경건(pieatas)하나님을 아버지로서 사랑하고, 그분을 주님으로서 공경하며, 그분의 공의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을 죽기보다 더 두려워하는 순수한 감정 속에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의 삶에서도 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신학을 했다. 스윈녹은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은 마음의 경건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것은 삶의 경건이다. 이 두 가지 경건을 함께 지닌 사람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다.“고 말한다.

존 오웬은 신학의 목적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찬양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른 신학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주목적으로 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윌리엄 에임스(William Ames, 1576-1633) 신학은 하나님에 대해 사는 것에 대한 교리 혹은 가르침이다라고 말하며, 토마스 왓슨은 모든 사람들의 삶과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진리의 대강령이다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실제의 청교도들의 설교를 살펴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혹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 자신과 성품들)을 설교하기에 힘쓴 자들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지표를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그래서 성도들로 하여금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도와주었다. 청교도들은 교회사 속에서 가장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며 하나님만을 위하여 살아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참된 칼빈주의 청교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영광을 증진시키는데 열심이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모토는 칼빈주의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소망이다. 칼빈주의 청교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통해 자신의 존재 목적과 기쁨을 찾는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영광스러운 송영을 믿으며 알고 사랑하며 이 영광의 찬미대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목적을 위해 살기를 소원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봐야 한다.

청교도처럼 우리도 삼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갈망하는가?’

우리가 회심의 결정적인 필연성과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것에 대한 청교도의 견해를 공유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청교도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힘쓸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청교도가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청교도가 그렇게 한 것처럼 한 눈을 영원에 고정시키고 살 수 있겠는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6:16)

 

이동훈 목사

이동훈 목사는 안양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Th.M) 조직신학 석사과정 중에 있으며,

현재 마르투스 출판사 대표 및 예수안에 하나교회 교육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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