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자의 순종과 언약의 성취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의로움의 전가 교리를 은혜언약과 연결하여 풀이했다. 또한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전가교리를 정립하기 위해서 그 기초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을 더욱 자세하게 다뤄갈 것이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움을 실천하는 일에 매진하는 삶을 추구한다. 의를 “실행한다”는 헬라어는 “포에이사이”인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갖도록 창조하신 모든 인간들이 그의 법을 따라서 완벽하게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 요구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것만이 아니라, 심지어 죄에 대한 징벌까지도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하는 긍정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죄인에게 그에 합당하고 정당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의를 실행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10절에서,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고 하였다. 야고보서 1장 22-27절에서도, 율법을 그저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구절들은 신명기 27장 26절,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를 인용하고 해석한 것이다.
의를 실천하는 기준이 율법 안에서 제시되었기에 종교개혁자들은 율법의 기능들을 강조하였다. 멜랑히톤은 루터가 제시한 율법의 두 가지 기능, 첫째로 죄를 비춰주는 거울의 용도, 둘째로 세상에서 악을 억제하는 용도가 있음을 강조했다. 율법의 기능이 매우 부정적으로 비춰지는데, 멜랑히톤은 이외에도 현재 기독교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기능을 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칼빈은 이것을 받아들여서 구약의 율법들이 감당해온 기능들 중에서 “제3용법”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고 해석했다. 율법의 제3용법이란, 감사의 규범, 혹은 복음에 대한 반응의 용도이다. 죄인들에게 율법이 선포되면, 성령이 율법을 사용해서 중생케 하고, 회개하게 만든다. 기독신자의 생활 속에서 율법은 지속적으로 죄악된 욕망들에 대한 권징을 하며, 매일 회개를 촉구하고, 죄악된 미혹과 함께 날마다 씨름할 때에 교훈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루터에게는 율법이 매우 부정적인 기능만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칼빈은 매우 다르게 율법의 긍정적인 기능을 강조하였다.
후기 종교개혁자들은 예수님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행위언약”을 성취하신 것으로 이해했다.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아담에게 주어진 명령과 조건을 하나님과의 “행위언약”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였는데, 예수님께서 둘째 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으로서 온전히 순종하신 것은 아담의 실패를 완전히 역전시키는 일이었다.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행위언약의 정당한 요구를 만족시킨 것이다.
모세와의 언약에서는 율법의 요구와 명령이 자세하게 드러났다. 모세가 제시한 율법의 특성에 대해서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언약으로 규정한 이유는 옛 언약 시행에 있어서의 독특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모세 언약을 “타락 후 아담과 맺어진 은혜언약의 점진적인 표현과 실현에 일치하는 행위언약 협정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16세기와 17세기 언약신학자들이 모세 언약 속에서 은혜언약의 요소와 행위언약의 요소가 동시에 담겨있었음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지만, 이미 두 언약의 모든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요소들이 그들의 사상 속에 존재했었음이 틀림없다.
클라인 교수는 언약신학을 변호하면서 행위언약의 개념을 유지하려고 했고, 오직 믿음으만 의롭게 된다는 칭의론을 지켜 나가려 했다. 모세언약은 은혜언약을 시행하는 것이며,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을 재설정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를 철저히 옹호하고자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결코 죄인에게는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모세와 맺언 언약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신 것인데, 자기 백성들에게 의무로만 부과하신 것이 아니라 축복의 길로 나아가게 하려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세와 맺으신 율법 언약은 은혜로운 하나님의 준비하심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된 언약 백성이 순종할 때에 내려 주시는 축복은 칭찬과 명예와 영광과 축복이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그러나 위와는 정반대로 불순종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데, 그 상세한 설명은 앞부분보다 무려 세 배에 달한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우상들을 따라가고 말았기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순종의 제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과 맺은 새 언약의 성취를 통해서 영생과 진리와 거룩함을 선물로 주신다. (계속)
김재성 박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개혁주의 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칼빈의 신학사상과 정통개혁신학의
흐름과 주제들과 주요 신학자들을 추적하여 소개하는데 앞장서 왔다.
현재는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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