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믿음} 정이철 <2022년 새해에는 교인들에게 율법준수 가르치는 목사가 되지 말자!>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분리해 ‘그리스도의 생애’를 건너뛴 이단, 이른바 “십자가 보혈파”인 서철원파 정이철 목사는 위 링크 글에서 “지금도 율법 준수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목사들은 마귀 종자들입니다.”며 ‘에스겔 11장 19절과 36장 26절’을 인용해 자신의 논지, ‘중생자에게 율법준수는 중생자가 가만히 있어도 성령으로 이뤄진다.’는 논지를 펼친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겔 11:19)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6)
중생 시 확정 성화는 성화의 주인이신 성 삼위 성령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이루시는 사역이다. 즉, “칼빈도 깨닫지 못한 성화론”이라며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을 고백(선포)함으로써 죄의 소욕을 이긴다. 성화를 이룬다.”는 성화론, ‘믿음 선포로 이루는 저절로(자동으로) 성화론’이라는, 이단성 있는 성화론을 주장하신 서철원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용어로는 성령 하나님께서 “자동으로” 이루시는 사역이다. 그러나 중생 시부터 이루는 점진성화는 중생한 내가 성령 하나님을 좇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성령 하나님께서 저절로(자동으로) 이루시는 사역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께서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그 “모든 성경”인 {구약 성경}에는 ‘에스겔 36장 26절’만이 아니라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는 명령을 담은 ‘에스겔 36장 27절’도 있다. 즉, 위 링크 글은 {구약 성경}에서 ‘에스겔 36장 27절’을 삭제한 이단의 글이다. 정이철 말을 빌려 말하면, “마귀 종자”의 글이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둬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7)
나는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서철원파 정이철이 ‘칼빈 선생님 구원론을 받들어 이단 구원파 교리를 비평하신 박영돈 교수님’을 이단몰이 마녀사냥을 할 때인 2018년 초에 <이단들처럼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정이철 목사 ⑱ : 정이철 목사 ‘저절로 성화론’은 ‘다른 복음’이 아닌가? ⑧>에서 ‘에스겔 36장 27절’을 인용해 다뤘다. 그러함에도 정이철이 자기 주특기 확증 편향을 발휘해 {구약 성경}에서 ‘에스겔 36장 27절’을 삭제하는 “마귀 종자”의 짓을 한 것이다.
칼빈 선생님께서는 {기독교 강요 제2권} [2장] <24항>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완전한 의義의 표준이다.” 하시며 {기독교 강요 제3권} [14장] <13항>에서 “하늘에서는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는 의義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다.” 하셨다. 그러함에도 “마귀 종자”인 이 바보 병신은 위 링크 글에서 {구약 성경}에서 ‘에스겔 36장 27절’을 삭제하기 전에 “마귀 종자”답게 다음과 같이 육갑을 떤다.
지금 천국의 영혼들이 율법 준수하고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을 아무리 보아도 천국의 영혼들이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지키면서 산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4절이나 21장 8절’ 같은 구절들, [요한계시록] 여러 구절은 우상숭배와 음행을 경고하고 있음에도, ‘천국의 영혼들은 십계명 첫째 돌판을 어기는 우상숭배를 일삼으며 십계명 둘째 돌판을 어기는 음행과 살인과 “마귀 종자”인 이 바보 병신과 똑같이 이단들처럼 확증편향에 따른 거짓증거를 일삼는 삶, 병신 육갑을 떠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인가?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1:8)
“요한계시록을 아무리 보아도 천국의 영혼들이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지키면서 산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 주장은 ‘정이철은 이단들처럼 문해력이 낮은 바보임’을 뜻하는 주장이다. 즉, ‘서철원파 정이철은 요한계시록 7장 10절~12절에서 천국은 모세 십계명 첫째 돌판을 온전하게 준수하는 나라임을 독해하지 못하는 바보 병신임’을 증명한 주장이다.
큰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해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계 7:10~12)
{신약 성경} [요한계시록]은 ‘요한일서 2장 29절’에서 “너희가 그분이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義를 행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하신 요한 사도께서 쓰신 성경으로,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긴장 속에 있는 이 땅 위에서 ‘어린양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의義의 완전한 모범으로서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인내하는 성도들’을 위로하며 격려하시려고 주신 성경이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해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계 12:1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요한 사도께서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를 말씀하심에도, 이 바보 병신은 위 링크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약의 성도는 회심준비론을 가르치는 청교도 사상처럼 구원 전에도 율법 준수하고 구원 후에도 율법 준수에 힘써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죽으실 때 율법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율법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율법의 시대인 구약 시대는 율법을 행함으로, 은혜의 시대인 신약 시대는 믿음으로’ 라는 도식을 가진 세대주의 주장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이루신 율법의 요구는 ‘지키면, 산다.’는 율법의 축복이 아닌 ‘어기면, 죽는다.’는 율법의 저주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 사역’을 믿는 우리는 이 율법의 속박,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을 얻은 자들이다. 이를 두고 칼빈 선생님께서는 {기독교 강요 제2권} [7장] <14항> 1문단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존 칼빈 {기독교 강요 上} 원광연 역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3)’ 445쪽에서 옮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자, 율법은 신자들을 권고하는 힘이 있다. 그들 양심을 저주로 묶어두는 힘이 아니라, 그들을 계속해서 강권해 그들 게으름을 흔들어 깨우는 힘이요, 또한 그들을 일깨워 자기들 불완전함을 채찍질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많은 이가 그 저주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신자들에게는 율법이 ㅡ여전히 도덕법을 일컫는 것이다ㅡ 폐지됐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율법이 신자들에게 무엇이 올바른가를 명령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다만 과거에 그들에게 해당했던 것이 이제는 사라졌다는 뜻이다. 곧 율법이 그들을 위협하고 공포를 줘 그들 양심을 정죄하고 파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칭 “맥도날드 신학자”, 맥도날드에서 {기독교 강요}를 읽었다는 이 바보 병신은 {기독교 강요}를 읽었음에도, ‘율법에서 해방’을 ‘율법의 속박,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으로 독해하지 못한 채 “신약의 성도는 ~~~ 구원 후에도 율법준수에 힘써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로 독해함으로써 자신의 이단성을 증명하는 육갑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다음은 {기독교 강요 제2권} [7장] <13항>에서 옮기는 글이다. ‘존 칼빈 {기독교 강요 上} 원광연 역’ 444쪽~445쪽에서 옮긴다. 배경색은 내가 칠한다.
13: 율법을 폐지하는 것은 그릇된 처사임
그런데 일부 무지한 사람들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솔하게도 모세의 글 전체를 내어던지며, 율법의 두 돌판을 없애버린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죽게 하는 직분”(참조, 고후 3:7)을 포함하고 있는 가르침을 붙든다는 것은 분명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악한 생각은 머리에서 제거해야 한다! 모세는, 율법이 죄인들 가운데서는 죽음 이외에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지만, 성도들 가운데서는 더 낫고 훨씬 탁월한 용도가 있다는 것을 훌륭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령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 생명이니, (신 32:46~47)
만일 의의 완전한 모범이 율법에 제시돼 있다는 것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올바르고 정의로운 삶에 대한 규범이 우리에게 필요가 없든지, 아니면 율법에서 떠나서는 안 되든지 둘 가운데서 하나일 것이다. 우리 삶을 규정하는 규범은 여러 가지가 아니고, 오직 한 가지 영구하고 불변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인의 삶이 끊임없이 율법을 묵상하는 삶이라는 다윗의 진술(시 1:2)을 어느 한 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모든 시대마다 적용되는 진술로 보는 것이다.
우리가 이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한에는 율법이 요구하는 도덕적 순결에 결코 이를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법을 끔찍하게 여겨 멀리하거나 그 교훈을 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율법은 지금 우리를 향해서 마치 우리가 모든 요구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결코 만족하지 않는 엄격한 사법 시행관처럼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율법은 우리에게 완전한 삶을 권고함으로써 평생토록 우리가 열심히 지향해야 할 목표를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율법은 우리 의무와도 일관성이 있으며, 또한 유익하기도 한 것이다.
…(하략)…
“새해에는 교인들에게 율법준수 가르치는 목사가 되지 말자!”고 병신 육갑한 바보가 “{기독교 강요}가 {성경}이냐?”고 말할 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개혁 교회 (율법준수) 성화론은 그릇됐다.”며 오직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만을 외쳤던 반법주의 이단, 이른바 “십자가 복음주의” 이단 고故 김성수 목사를 따랐던 이단들을 대항해 인용했었던 주님 말씀을 적는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는 모세가 그들을 떠나기 전 <십계명>을 다시 가르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부했던 것과 같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떠나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계명(율법)’이 들어 있다. 그 ‘하나님의 율법’은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 헌법으로서 <모세의 십계명>’을 풍성하게 해설해 주신 율법, <주님의 산상보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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