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 순종은 온 생애 동안 율법 전체에 대한 순종이다
자기 비움(케노시스)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긍휼하심을 드러내고자 하는 뜻에 따라서, “아담과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순종이 지상에서 시작되는 지점은 성육신이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서 상속자의 특권을 누리게 하시려는 목적이었다고 했다.
특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설명하면서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을 근거로 풀이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고 하였다. 바울 사도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는 문구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하나님이시오, 동등한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시며, 영원 전부터 선재하신 분이라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의 “본체”에 대한 이해는 초월적인 영역이라서 완전히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는 “모르페”인데, 영어 성경에서는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라고 번역했다. 예수님은 이미 하늘나라에서의 지위를 갖고 계셨으며, 자신의 영광과 존귀함을 부인하고 죄인 된 사람의 형태를 취하였다. 원래는 하늘의 통치자이기에, 신적인 본성에 속한 권능과 특권을 모두 다 가지고 누릴 수 있으신 분이시다. 고든 피 교수는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가 “영광”을 비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경배를 없는 것으로 했다고 풀이했다.
칼빈은 “자기를 비워”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노시스”라는 용어가 가져오는 혼돈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신성을 비우신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감추셨다고 해야만 한다. 성자 그리스도는 자신의 신성 자체를 전혀 비우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일시적으로 신성을 숨기셨다는 것이다. 칼빈은 오시안더가 “본질적 칭의론”이라는 개념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과의 결합을 통해서 우리의 육체 안에 의로움이 들어와서 혼합물로 주입된다는 해석으로 혼란을 야기하자, 이에 반대했다.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을 때에 그가 의가 되셨고(빌 2:7), 그가 아버지께 드린 순종을 통하여 우리가 의롭다 하시며(빌 2:8), 따라서 그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것은 그의 신성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에게 부여된 직분의 본질에 따라서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그리스도의 신성마저도 “케노시스”의 상태에 포함시키려고 하는데, 이것은 본문에 대한 왜곡이다. 빌립보서 2장 7절에 유일하게 언급되고 있는 “케노시스”는 단지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본성과 관련지어서 스스로 성자께서 낮아지심을 지적한다. 성자는 인간의 본성과 연합하시고자 진정 사람과 똑같은 몸으로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의 창조주요,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이 바로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이다. 이 본문은 이사야 52장 13절에서 53장 12절까지를 반영하는 구절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의 극치이자, 자기의 특권과 권능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아담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나의 종”이라고 하였다. 이런 개념들을 상호 교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주의 주권적 통치자로서의 신적 위엄을 포기하시고, 능동적으로 순종하시고자 스스로 자기 비하를 통해서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 (계속)
김재성 박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개혁주의 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칼빈의 신학사상과 정통개혁신학의
흐름과 주제들과 주요 신학자들을 추적하여 소개하는데 앞장서 왔다.
현재는 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명예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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