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청교도 회심준비교리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대략 이렇습니다.
"인간이 회심을 준비할 수 있다."
"회중파 청교도들만 강조한 교리요, 현재 회중파는 이단이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을 전하면 개혁신학이 아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청교도 준비교리는 아래 바빙크가 말하는(참고로 헤르만 바빙크는 현재 합동 교단에 속한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네덜란드 장로교 개혁주의 정통신학자이다) 인간이 회심을 준비할 수 있다는 로마가톨릭, 알미니안주의가 말하는 "준비주의"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준비시켜주시는 교리요, 바빙크가 말했듯이 분명 성경의 근거대로 준비교리는 존재하고,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경탄하는 개혁신학의 교리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중생에 선행하는 활동들을 ‘예비적 행위들’ 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선행적 행위들’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의미에서 ‘예비적 은혜’를 언급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심지어 자연적 생명을 무시하는 모든 감리교적 경향에 맞서 탁월한 가치를지닌다. 왜냐하면 예비적 은혜를 고백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이 행할 수 있는 것을 행함으로써, 즉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구원을 열망하는 등, 적정공로 meritum de congreo에 따라 중쟁의 은혜를 얻거나 혹은 자신이 이 은혜를 획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고백이 포함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 보존하고 통치하는 분이며, 심지어 사람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자신이 정한 때에 믿음의 은사를 줄 자들의 생명을 정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여섯째 날에 진화를 통해 더 낮은 피조물들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지음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선행하는 행위들을 통해 예비되었다고 일컬어질 수도 있다. 그리스도 자신은 위로부터 왔으나, 그리스도의 오심은 매우 오래전에 예비되었다. 자연과 은혜는 구별되고 혼동되거나 혼합되어서는 안되지만, 하나님은 이 둘을 연관시킨다. 창조와 구원과 성화는 경륜적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게 돌려지지만, 이 삼위 하나님은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이며 함께 구원의 사역을 성취한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요 6:44]. 그리고 아들이 성령을 보낸 자 외에는 아무도 성령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비적 은혜’ 가 존재한다. 하나님이 친히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은혜로운 사역을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준비한다. 하나님은 삭개오의 마음에 예수를 보고자 하는 욕구를 일으키고 (눅 19:3),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군중들 가운데 마음의 찔림을 느끼게 하고 (행 2:37) , 바울이 땅에 엎드러지게 하며 (행 9:4), 빌립보 감옥의 간수를 당황하게 하고 (행 16:27) , 이와 같이 자기 모든 자녀들이 중생하기 이전에 그리고 중생하는 시각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인도한다.
비록 그들이 아직 그들 편에서 속죄와 칭의를 소유하지 못하고, 아직 중생과 믿음을 갖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며,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은혜로 그들을 성령께 인도하는데, 오직 성령만이 거듭나게 하고 위로할 수 있는 분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에 따라 후속적인 것들과 교회로의 부르심과 연관된다. 잉태와 출생,가정과 세대,민족과 땅,양육과 교육,지적 발달과 마음의 성장, 끔찍한 죄로부터의 보존, 무엇보다도 성령훼방죄로부터의 보존, 온갖 종류의 악과 불의에 대한 포기, 재앙과 심판들, 복과 유익들, 율법과 복음에 대한 설교, 심판에 대한 낙심과 두려움, 양심의 각성과 구원의 필요. 이 모든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중생을 위한 예비적 은혜이며 신자가 나중에 교회에서 차지할 자리를 위한 예비적 은혜다. 물론 하늘에 이르는 길은 하나이지만, 이 여정에 들어서기 전에 그리고 이 도상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다양하게 나타나며, 성령의 은혜는 풍부하고 값 없는 것이다. 예레미야와 세례 요한과 디모데는 므낫세 또는 바울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에 인도되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각각 다른 임무를 수행했다. 경건주의와 감리교는 이러한 인도하심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며,모두 것을 단 하나의 형태로 한정시켜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경탄한다.
[헤르만 바빙크 『개혁교의학 4권』,32-3.]
이동훈 목사는 안양대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한 후,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Th.M) 조직신학 석사과정 중에 있으며,
현재 마르투스 출판사 대표 및 예수안에 하나교회 교육목사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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